문을 닫고 나오면
집 안의 조용함이 등 뒤로 남는다.
조용함은 벽에 붙어사는 게 아니라
사람의 등에 붙어서 따라 나온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내 얼굴이 잠깐 비쳤다.
표정이 없는 얼굴.
표정이 없는 게 아니라
표정을 꺼둘 때의 얼굴.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발소리가 나를 앞질러 내려가게 두었다.
오늘은 그 소리가 필요했다.
밖은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스치고
목으로 얇게 내려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지 않았다.
크게 들이마시면
내 안에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올 것 같아서.
가로등 불빛이 바닥을 젖게 만들고 있었다.
빛이 젖는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느껴졌다.
빛도, 공기도, 사람도
조금씩 젖어 있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건
몸을 앞으로 보내는 일인데
오늘은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다.
몸만 먼저 걷고
마음은 뒤에서 질질 끌려왔다.
엄마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생각하지 않으려는 힘이
이미 엄마를 잡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흐렸고
엄마의 소란만 또렷했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지나간 자리.
눈빛의 온도가 아니라
눈빛이 남긴 압력.
그 압력은
어릴 때부터 내 몸을 먼저 만들었다.
어깨를 올리고
턱을 물고
손끝을 늦게 돌아오게 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주머니 안에서
짧은 벌레처럼 울렸다.
나는 꺼내지 않았다.
한 번 더 울리면 꺼내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울린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더 무서웠다.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 위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떠 있었다.
메시지 내용은 보지 않았다.
미리 보기로 첫 줄이 잘려 있었다.
"너..."에서 멈춰 있는 문장.
'너' 다음에
무슨 말이 올지
나는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괜찮냐는 말일 수도 있고
왜 전화 안 받냐는 말일 수도 있고
그냥 아무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말이든
내게는 먼저
소란으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읽지 않았다.
읽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닌데,
읽는 순간
내 안으로 들어올 게 분명해서.
나는 화면을 껐다.
껐다가
다시 켰다.
껐다가
다시 켰다.
화면을 켤 때마다
'엄마'가 다시 떠올랐다.
메시지는 한 통인데
소란은 매번 새로 왔다.
나는 걷는 속도를 조금 올렸다.
발이 바닥을 강하게 눌렀다.
발바닥이 아파오면
가슴이 덜 아프니까.
엄마는 내게 소란이었다. 다만,
내 마음속 여러 겹의 소음 중 가장 진한 소음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듯 모를 듯 몸에 새기고 있었다.
그 흔적이 몸에 남아 스며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처인지 흔적인지 사랑인지 이름 부르지 못할 소란. 엄마.
나는
속으로 한 번 말해보고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면
눈물이 덜 나오는 것 같아서.
차가운 공기가
내 볼을 만졌다.
손이 아니라
공기가 만지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의 손보다
공기가 더 안전할 때가 있다.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받을 자리가 있는 사람에게 온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받을 자리가 없었다.
엄마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들어오면
내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담지 못했다.
담지 못한 채
엄마를 견뎠다.
휴대폰은 다시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주머니 안에서
계속 무거웠다.
한 통의 문자로
주머니가 무거워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도 배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꺾었다.
돌아간다는 말이
오늘은 조금 낯설었다.
문을 열면
조용함이 먼저 오겠지.
그 조용함은 또
내 마음을 정리해 달라고 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읽지 않은 문자 하나를 품은 채로
조용함을 맞이해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사랑뿐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