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에게로

<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긴 사람> 마지막 이야기

by 온다


나를 데리고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데

오래 걸렸다.


버스에 오른다.

창에 이마를 가까이 댄다.

유리의 냉기가

잠깐, 생각보다 먼저 와닿는다.


바깥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불빛들은 젖은 창 너머에서 길게 번진다.

낯익은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만

잠시 내 것이 된다.


그녀와 헤어져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늘 깊은 호흡이 필요했다.


나는 그 호흡을

꽤 오랫동안 연습해 왔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나를 속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아직 놓지 못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도

내가 내게 물었다.

아무도 오래 들어주지 않아도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겉으로 보면 조금 외로워 보였을 것이다.

혼자서 자기 마음의 곁에 앉아

오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어딘가 쓸쓸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외로움의 모양을 빌린 사랑이었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조용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되풀이해 온 약속 같은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마음.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지독하게 무겁던 시절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진 지금에도,

마음은 먼저 나를 부르고

나는 그 부름을 더는 모른 척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수많은 나를 만났다.


울고 있는 나,

버티고 있는 나,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던 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상처받을까 봐 먼저 접어버리던 나.

사라지고 싶다가도

끝내 사라지지 않으려 애쓰던 나.


나는 그런 나를 지나

지금의 나를 살아내는 중이다.


기쁘지 않은 날에도

나를 버리지 않으려 했고,

낯선 얼굴의 나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나의 길.

나의 감각.

나의 신뢰.


걷고,

흔들리고,

잠시 멈추고

다시 걷는 일.


그렇게 오래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살아왔더니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돌아갈 곳이 생긴 사람만이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안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은

끝없이 구하게 되지만,

마침내 자기에게 돌아올 줄 알게 된 사람은

조금씩 건넬 수 있게 된다.

마음도,

시간도,

사랑도.


버스가 멈춘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스민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내가 나를 데리고

천천히,

끝내,

또 한 번 삶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삶에는

이제 외롭지 않은 집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긴 사람'을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함께 걸어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