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고생으로 성장했나요?

나의 성장은 고난이 아닌 내가 이뤄낸 것.

by 루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 말들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많이들 알 것이다. 저 말이 유효했다면, 우리는 모두 성장해 있어야 하니까. 여전히 한국 청년의 주요 사망원인은 자살이고, 서울시는 외로움과 고립을 줄이기 위해 '고독 없는 서울'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정말 고생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면, 이 사회는 이미 단단해져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나 또한 한때는 고생을 사서 한 적도 있다. 젊었으니까. 어디서든 버텨내고, 무엇이든 해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겨낸 것들이 모두 내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를 온통 일로 채웠다. 방송작가 시절 나에게 '쉬는 날'은 없었다. 그저 일요일 오전이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대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마저도 불안해 언제나 모든 업무를 할 수 있게 3kg짜리 노트북을 매일 등에 메고 다녔다.


그렇게 버티며, 나는 방송바닥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룰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트라우마를 남겼다.


열정으로 뛰어들면 다시 상처받을까 봐, 업무로 내 일상을 채우면 번아웃이 올까 봐 나는 두려워졌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직장을 오래 다니고 싶어 진급을 망설이고 있다. 진급을 하면 근무시간이 들고 책임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보다 '그 시간을 다시 견딜 수 있을까?'가 더 먼저 걱정이 되었다. 또 번아웃이 오면, 이번에도 나는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에.


이것이 성장일까.

스트레스에 예민해지고 안정만 추구하는 내가 과연 성숙한 걸까. 아니면 퇴화하고 있는 걸까.


물론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문제는 내가 그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게 남은 건 외상 후 성장이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였다.


성장과 스트레스, 그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회복탄력성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단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방법에서 찾는단다. 고난을 끝이 아닌 과정으로 해석하고, 무엇보다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믿음을 연습 중이다. 나를 향한 믿음. 그래서 요즘은 아주 작은 도전 루틴을 만들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쉬는 날 공복으로 헬스장에 가는 것 등 나를 위한 작은 루틴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든다. 결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죽지 않는 한 인생은 계속되니까.


그래서 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택하기로 했다. 루틴 속에 회복탄력성을 한 스푼 넣어,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단단함 삶을 만들고 싶다.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고난은 온다. 그 고난으로 내가 성장할 방법은 아마도 그 고난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를 준 마지막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 많은 고난이 함께했다. 그중 가장 마지막, 그 프로그램을 끝내고 친구와 오랜만에 만남을 갖던 날이었다. 메인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자료가 급히 필요하다며. 그 자료를 챙겨야 하는 막내는 지금 자신과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 바쁘니 쉬고 있는 내가 그 자료를 보내라는 전화였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택시를 타고 노트북을 가져와 그 일을 처리했다. 항상 3kg의 노트북을 들고 다니다 프로그램이 끝나 두고 나왔던 것인데 결국 이런 상황이 되다니. 깊은 좌절감에 아예 방송 작가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일을 내가 할 의무는 없었다. 그저 내가 지나친 인정욕구에 '안된다.'라는 말을 못 했을 뿐이다. 또한 그 작가는 원래 무례한 것이 맞았고 8년이 지난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그냥 그렇게 몰락하는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결국 그 고난을 해석하고 소화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성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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