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랑하는 내 아이지만, 남들 앞에서 아주 조금 부끄러웠던 에피소드들
#1 할머니는?
어린이집 학부모 상담일을 앞두고 아이에게 미리 말했다.
"내일은 엄마가 어린이집에 갈 거야."
아침 내내 아이는 몇 번이나 되물으며 확인했다.
"오늘 엄마가 와? 엄마가?"
"코 자고 일어나면 와?"
일과를 바쁘게 마치고 반차를 내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아이가 아침부터 "오늘 엄마 온다"고 말했다며,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이가 나를 보고 얼마나 기뻐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선생님 손을 잡고 모퉁이를 돌아 나를 마주하는 순간, 아이는 얼음처럼 굳더니...
"할머니는? 할머니 보고 싶어!"
엄마가 왔다는 게 실망스러운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늘 친밀하게 지내던 할머니가 오늘은 안 왔다는 사실이 서운했나 보다.
하지만 반차까지 내고 달려온 엄마를 보고도 기뻐하지 않는 내 아이의 모습에, 나는 선생님 앞에서 조금 창피했다.
#2 귀여워!
우리 아이는 귀엽다. 내 아이니까 당연히 귀여워 보인다.
나는 수시로 아이를 끌어안고 말한다.
“어쩜 이렇게 예뻐?”
“아유 귀여워.”
“너무 귀엽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자기 가슴을 토닥이며 묻는다.
“OOO 귀여워?”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손으로 꽃받침까지 만들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 계산대 옆 거대한 거울 앞에서 아이가 갑자기 외쳤다.
“귀여워!”
그 큰 목소리로, 주저 없이, 자신에게 향한 선언처럼.
주변 직원들과 손님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귀엽기도 하고, 동시에 얼굴이 화끈했다.
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엉엉 울던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했다.
“아이고, 너 이제보니 미남이구나.”
그 한마디에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그날 만나는 모든 가족에게 자랑했다.
“의사 선생님이 OO이 미남이래!”
칭찬은 기억하고, 저장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꺼내 쓰기까지 한다.
아무튼 우리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아주 잘 안다.
#3 아줌마 어디 가는 거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 탔다.
그러자 아이는 그 학생을 한참 바라보더니,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아줌마 어디 가는 거야?”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나는 재빨리 말했다.
“누나! 누나라고 해야지!”
이미 늦었다.
꽃다운 나이에 ‘아줌마’라니.
나는 “죄송해요”를 연발했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날 이후로 호칭 교육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배달 오신 분은 배달원님.
아파트에서 뵙는 분은 경비원님.
버스에서는 기사님.
그리고 마땅치 않을 때는 저분.
다행히 아이는 금방 배워줬다.
#4 고양이다!
아이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알고 있는 단어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가끔 … 정말 목소리가 크다.
그 시기엔 이상하게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전부 “고양이”였다.
할머니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 강아지가 훨씬 친숙할 텐데도 말이다.
나는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했다.
“이건 강아지, 저건 고양이야.”
설명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밖에만 나가면 다시 외쳤다.
“고양이다!”
놀이터에서는 더 난감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이는 정말 큰 소리로 말했다.
“고양이! 고양이다!”
지나가던 분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나는 괜히 민망해 얼른 바로잡았다.
“아니야, 저건 강아지잖아. 멍멍! 강아지!”
하지만 다음 강아지가 나타나면 또다시
“고양이다!”
말 배움의 순서는 참 알 수가 없다.
나는 당연히 ‘엄마’를 먼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를 먼저 했다.
엄마는 한참 뒤에야 등장했다.
그리고 강아지보다 먼저 ‘고양이’를 배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랑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이 한 장면 안에 켜켜이 쌓인다.
때로는 내 체면이 무너지고, 때로는 웃음이 터지고, 때로는 조용히 배우게 된다.
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부모로서의 나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고, 조금 더 웃게 만들고, 조금 더 내려놓게 한다.
부끄러웠던 순간들은 지나고 나면
언젠가 다시 꺼내어 웃게 될,
‘엄마로서의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한 장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