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자랑은 하는 게 아니다 1

by Onda

자식 자랑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수차례 체감해오고 있다.

머리로는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늘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그걸 실천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정말 많이 깨지고 배우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가 되고, 어제의 규칙이 오늘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너무 흔하게 일어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다. 우리 아이 9개월 무렵, 나의 자랑은 이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수면 교육 성공했어요. 100일도 안 돼서 통잠 자기 시작했는걸요."


아이 재우느라 힘들다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힘들겠네' 하고 겉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속으로는 "왜 수면 교육을 안 하지?" 하고 은근히 판단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 아이는 육아 서적에서 안내하는 대로 혼자 자게 두었더니 초반에 조금 칭얼거리긴 했지만 이내 스스로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면 되는데, 왜 안 할까. 요즘 엄마들은 너무 애를 애지중지한다더니, 애 조금 울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주변에 출산을 앞둔 가정에도 적극적으로 수면 교육을 권장했다.

이른 시간에 원활하게 '육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낮 시간을 좀 더 희망차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지금, 아이는 부모가 없이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 "엄마랑 잘 거야. 엄마!!"


언제 이렇게 된 걸까? 아이가 아플 때, 밤새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쓰다듬고 달래며 그 밤들을 몇 번이고 견뎌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아이는 알아버렸다. 밤에 엄마와 붙어 자는 게 얼마나 따뜻하고 달콤한 일인지.

그리고 한 번 알고 나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조금 울리더라도 아이 스스로 포기하고 잠들게 하면 곧 적응할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 아이의 울음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약한 울음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파트가 떠나가듯 울기 시작하니 그걸 그대로 두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는 한적한 시골집이 아니라 벽 하나 사이로 이웃과 살아가는 공동주택의 주민이었다.

언제든 화난 이웃집의 항의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오래 울리는 건 나의 의지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잘 시간이 되면 온 식구가 아이 방에 누워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조용히 자는 척을 한다.

아이가 어느 순간 숨결을 고르게 하며 잠들면 그제야 살금살금 빠져나와 각자의 시간을 잠깐 즐긴다. 그러다 다시 아이 방으로 돌아가 함께 눕는다. 물론 진짜 그냥 모두 잠이 들어버리는 때도 종종 있다.

아이가 잠을 자다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나를 때리고 밀쳐서 깊은 잠이 끊기는 날도 많다.

그러면 너무 괴로워서 '지금이라도 혼자 자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또, 잠든 아이의 얼굴이 너무 천사 같아서 그 부드러운 순간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기도 한다. 육아는 늘 이렇게 양가감정을 안고 흘러간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은 아이가 "잘 시간이야" 하면 기분 좋게 따라온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코 자랑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벌써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요즘 우리 집 취침 루틴은 이렇다.

책 두 권을 아이가 고르면, 그것만 읽고 불을 끈다.

처음에는 책 권 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읽어줬는데, 아이는 안 자려고 책을 끝없이 가져왔다.

그래서 '두 권'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처음엔 좀 저항이 있었지만, 내가 안 읽어주니 아이도 결국 포기했다.

뭐, 내가 이긴 게 아니라 아이가 져준 거겠지.


그런데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 물.

평소엔 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가 불을 끄면 자꾸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심한 날은 7~8번도 계속 물을 달라고 해서 내가 화를 낸 적도 있다.

처음엔 진짜 목이 마른가 걱정했는데, 횟수가 점점 늘어나니 '아, 이건 안 자려고 꾀 부리는 거구나' 싶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지만, 일주일쯤 지나니 점점 횟수가 줄었고, 지금은 아예 자기 전에 물 달란 말을 안 한다.


그리고 요즘의 최신 전략은 "엄마, 이야기 해줘."

불 끄고 누워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몇 번 해주다가 "이제 마지막 이야기야. 엄마 자야 해" 하고 말하면, 아이는 자기 작은 손으로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한다. (손은 작지만 힘은 아주 세고, 아주 아프다. )

이건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자기 싫어서 온갖 꾀를 쓰는 게 아이가 크고 있다는 증거니까 기뻐해야 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내 고민도 함께 깊어진다.

몇 주 후면 또 "더 놀다 잘래!" 하고 버티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육아가 참 그렇더라. '이제 됐다!' 싶은 순간, '이제는 좀 할 만하다' 싶은 바로 그 순간, 나를 비웃듯이 다시 레벨 업을 해버리는 게임 같다.

그리고 그 레벨업의 폭이, 늘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씩은 더 크다.

그래서 겸손해지게 된다.

자랑할 것도,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걸 아이를 통해 늘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육아는 결국 아이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날마다 나를 다시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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