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 언젠가 반드시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제까지 환하게 웃던 아이가 오늘은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소리치고, "아니야!"만 반복하는 날.
처음엔 당황스럽고, 때때로 억울하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모든 감정의 파도는 작은 사람이 마음의 중심을 찾아가며 잠시 흔들리는 과정이었다는 걸 조금 뒤늦게 알게 된다.
18개월 무렵까지 우리 아이는 순둥이 천사였다.
"엄마~",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이름만 불러도 태양같이 환한 미소로 쳐다봐주던 아이.
어디를 데리고 가도 "와, 웃상이네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예쁘게 잘 웃었다.
소아과에 예방접종을 맞으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실에 다른 아이들 울음소리가 가득해도 동요하지 않았고, 주사를 맞을 때도 전혀 울지 않거나 울어도 3초면 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교도 생겼다.
쇼핑몰이나 길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울고 소리를 지르면 '어쩜 저렇게 유난스럽지?', '부모님 너무 힘드시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순하다는 건 나만의 은근한 자랑이었다.
그런데 두 돌 무렵부터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야! 안돼! 못해! 싫어! 지금!"을 초당 몇 번씩도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좋은 것도 싫다 하고, 싫은 것도 싫다 하니 이 아이 감정의 날씨를 도무지 읽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 역시 어쩔 수 없는 내 아이인가.
나 안 닮아서 어쩜 저렇게 착하고 순하나 했는데, 결국 내 유전자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가.
"엄마가 책 읽어줄까?"
"아니야. 안 읽을 거야."
그래서 "그래, 그럼 책 치울게" 하면
"아니에요!!! 읽을 거예요!!! 읽고 싶어요!!!"
마치 내가 보물을 압수한 사람이라도 된 듯 울먹이며 달려든다.
간식도 똑같다.
"나 안 먹을 거야!"
"그럼 치울게."
"아니에요!!!! 먹을 거예요!!! 간식 주세요!!"
내가 무슨 굶기는 엄마라도 된 것처럼.
메뉴도 까다롭다.
"블루베리 먹을래?"
"응! 블루베리!"
블루베리를 꺼내자마자
"아니야! 라즈베리 먹을 거야!"
"그래, 그럼 라즈베리 줄게."
"아니에요!!! 블루베리요!!!"
이쯤 되면 정말 답답하고 지쳐서 한숨이 나왔다.
노래를 불러도 부정어가 잔뜩 들어간다.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넌 안 할 수 있어'.
'산골짝에서 왔지'가 아니라 '산골짝에서 안 왔지'.
언제까지 이럴건가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문득, 이 아이가 "아니야"를 말할 때마다 사실은 연습 중이라는 걸 알아챘다.
'내 마음은 이래', '나는 이걸 원해'를 아직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일단 "아니야"부터 내뱉는 것.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자꾸 넘어지듯, 감정을 배우는 중이라 자꾸 넘치는 것.
그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애가 예뻐서 웃는 건 그 아이가 타고난 기질이었고, 그 밝음은 내가 잘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떼를 쓰고 울고 밀어붙이는 모습들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자기 마음과 세상의 속도를 조율하는,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결국 시간 앞에서 부모로서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