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설명
교정지: 인쇄 전 최종 확인을 위해 출력하는 시안
감리: 인쇄소에서 직접 인쇄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
인디자인(InDesign): 어도비사의 전문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
"팀장님!! 어떻게 해요!?"
외근 중이던 오후, 팀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였다.
서점 MD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주일 전 배본된 책에서 말도 안 되는 오타가 발견되었고,
오타를 발견한 독자가 서점에 항의했고,
당황한 MD가 출판사로 확인 전화를 한 상황이었다.
많은 판매를 기대하고 있던 타이틀이었다.
이미 책은 서점에 입고되어 판매가 시작된 상태였고,
배본 수량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의 오타는, 정말 믿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작은 본문 속 글자도 아니고, 눈에 잘 띄는 챕터 제목 부분에,
그것도 무려 세 군데나 있었다.
누가 봐도 외계어 같았다.
담당자도, 우리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3교, 4교까지 꼼꼼히 확인했던 책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최종데이터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오류의 원인은 인디자인에서 출력 파일로 변환하는 과정 중 발생한 인코딩 오류였다.
디자이너 말로는, 가끔 인디자인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최종 인쇄 전 교정지에서 잡았어야 했던 부분이었고, 디자이너도 그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영업자는 대응이 먼저였다.
당장 화가 난 MD는 독자 문의에 답을 해야 하니
빠르게 후속 조치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왔다.
1. 사고 원인 파악
2. 긴급회의 및 대응 방안 수립
3. 자사 창고 담당자와 출고팀에 출고 중지 요청
4. 유통 서점에 도서 회수 및 입고 중단 공지
5. 각 서점 창고 재고 수량 파악 및 반품 회수 일정 협의
6. 수정 데이터로 빠른 재인쇄 및 재입고 일정 확보
7. 독자 문의에 대한 CS 대응 및 교환 발송 처리
8. 반품도서 입고 체크 및 회수 도서 전량 폐기 요청 (정상 도서와 섞이지 않도록 미리 처리)
9. 도서 재입고 후 서점 출고 수량 조정 및 출고 진행
이런 유형의 사고가 터지면, 2주에서 3주간 꾸준히 신경 써야 하는 추가 업무가 생긴다.
회사 내부에서는 제작부, 출고팀과, 외부에서는 각 서점 MD, 창고, 독자와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서 간, 외부 업체 간 갈등 또한 조심해야 한다.
특히 반품 처리 과정에서 서점마다 다른 정책과 절차 때문에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서점은 당일 반품이 가능하지만, 어떤 서점은 일주일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가장 힘든 건 독자 응대였다.
화가 난 독자분들 중에는 "이런 책을 어떻게 검수도 안 하고 출간하느냐"며 출판사 전체에 대한 불신을 표하는 분들도 계셨다.
일일이 전화로 사과드리고 교체 도서 발송 일정을 안내해 드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저자분께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것이었다.
저자분께도 담당자가 직접 연락드려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다행히 저자분은 이해해 주셨지만, 오랜 시간 준비하셨던 책에 이런 일이 생겨서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이런 사고는 아무리 꼼꼼히 확인해도 예상치 못한 기술적 오류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느냐다.
디자인과 제작 공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사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영업자는 가장 앞단에서 신뢰의 최종 책임자가 된다.
문제가 생기면, 제작팀과 출고팀, 서점 MD, 창고 담당자, 그리고 독자까지
수많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내 잘못이 아닌 일’까지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출판사의 얼굴이 되는 일이다.
출판사에 대한 인식은 결국, 책의 품질보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책임 있게 대응하는지를 통해 쌓여간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화가 난 상대에게도 진심으로 성실히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가 만드는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종이에 글자가 인쇄된 물건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한 권의 책 뒤에는 저자의 오랜 준비와 기다림이 있고,
그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설렘이 있고,
그 사이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기치 못한 오류가 이 모든 관계를 흔들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바로잡는 것도 결국 그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