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본 D-1, 팀장님, 이 책 제목이 없는데요?

by ONDE

용어 설명

- 출간일: 도서 판권에 인쇄되어 있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정식 발매일. (책의 생일)

- 배본일: 서점에 책이 발송되는 날짜 (책이 창고에서 이동하는 날)

- 하드커버: 딱딱한 표지로 제본된 책.

- 박(foil) 작업 : 금속 재질의 박(foil)을 인쇄물에 열과 압력을 가하여 부착하는 후가공 기법

- 띠지: 책 표지 위에 두르는 형태의 홍보물.

- 담지작업(댐지 작업): 책을 20~30권씩 포장해 이동 시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작업.


배본일이란?

보통 신간은 배본일 전날까지 출판사 창고에 입고되어야 한다.

간혹 배본일에 책이 입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서점 MD들도 사정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지만, 이미 서점 DB 등록과 예약 판매까지 마친 인기 타이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책을 기다리는 독자만큼이나 초조해진 MD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업자에게 MD의 신뢰를 잃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서점 입장에서는 출고 예상일이 변동되었으니, DB 수정도 해야 하고,

강성인 고객분들이 계시면 직접 상대해야 하니 예민하게 체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7월 12일이 배본일이라면, 책은 7월 12일에 창고에서 출발한다.

파주에 있는 배본사를 쓸 경우, 7월 12일에는 서점 창고에 '입고'가 된다. (택배 발송의 경우는 2~3일이 걸린다)

'입고'가 된다고 당일에 책이 독자에게 '발송'이 꼭 되는 건 아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배본됐다는 소식을 듣고, '왜 오늘 바로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느냐'라고 문의하는 독자분도 계신다.

당일 '배송'까지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날따라 입고되는 책의 종수나 수량이 적고, 서점의 주문이 많지 않으며, 당일 배송까지 해주는 서점이라면 배본 당일에 책을 받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입고한 날 '발송'을 해 하루 이틀에 걸쳐 '배송완료'가 된다.



실전 에피소드: 제목 없는 책

언젠가 에세이 도서 배본을 앞두고, 서점에 DB등록은 물론이고,

각 온/오프라인 서점 신간 미팅과 배본 수량 협의까지 마친 후 책의 입고만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에서 기다리던 입고 전화가 왔다.


"저.. 내일 나갈 신간이 3,000부 맞죠? 책이 다 왔는데요... 근데 이 책, 왜 제목이 없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제목이 없는 책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잘못 보신 거겠죠. 제목 없는 책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제목을 몰라서 사진 찍어 보내드릴게요"


사진을 받아봤더니,

정말이었다. 제목 없는 책이 배본을 위해 창고까지 도착해 있는 것이었다.


표지를 감싸는 높은 띠지에 제목을 후가공으로 박(foil) 처리해 넣기로 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댐지 작업까지 완벽히 마친, 그러나 박(foil) 처리가 빠진 띠지가 둘러진 책이 그대로 창고로 배송되어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당장 내일이 배본일이니, 창고에 입고 중지를 요청하고 제작부에 문의를 했다.

제작부에서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사진을 확인하자 인쇄소와 제본소의 실수임을 인정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틈도 없이, 곧바로 책을 회수해 띠지 작업부터 다시 해야 했다.


하지만 예정대로 배본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띠지를 회수해 후가공처리 후 다시 띠지 작업을 하는 일은 아무리 빨라도 2일은 소요되어야 한다.

이미 판매가 되어 책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점 MD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제작 사고 문제로 배본일이 늦춰졌음을 알리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고 처리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재작업 후 정상 배본되는 일정을 제작부와 확인해서 서점에 꼭 알려야 한다.

배본이 되는 날까지 신경을 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상태로 서점에 입고 후 독자분들께 배송되지 않은 것이다.

유통 후 책을 회수하는 일은 훨씬 복잡해진다. (이 에피소드는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하루 이틀 배본이 미뤄져도 큰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독자와 MD와의 약속을 한두 번 어기기 시작하면 독자에게는 서서히 신뢰를 잃어가고, MD에게는 정말 중요한 순간 필요한 요청을 하기 힘들어진다.

이것은 영업자 개인의 신뢰이자, 곧 출판사의 신뢰와 직결된다.

영업자의 실수가 아니라 해도, 독자와 MD와 직접 소통하는 것은 결국 영업자이고,

출판사의 신뢰도는 영업자의 신뢰 위에 세워진다.



영업자의 마음

이런 사고는 영업자가 미리 막을 수는 없다.

영업자가 제작처까지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고가 터졌을 때 영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작과 유통 과정 중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다.

너무 놀라 머리만 싸매고 있으면, 쉴 새 없이 걸려오는 거래처 전화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 뿐,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모두 한 팀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시길 바란다.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묘한 징크스가 있다.

'이번엔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그래서 중점 도서의 배본을 앞두고는 괜히 불안해지곤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고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해결하는 게 최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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