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내지?
잘 지내냐고 묻는 것도 웃기다. 당연히 잘 못 지내고 있는 거 같아 보이는데,
매년 챙기던 생일을 올해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날로 지나가 보니 좀 이상하더라.
미리 캘린더 정리를 해서 그런가 다행히 핸드폰은 조용했어.
약속했던 일정이 있었는데 지키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매년 고대했던 날들인데, 올해는 정말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버린 거 같아.
지난 한 달간은 좀 어땠어? 정리가 좀 되었어 아니면 계속 힘들기만 해?
부디 좀 정리가 돼서 너도 너만의 행복을 찾았기를 빌어.
정말 님에서 남은 점 한 글자 차이더라.
최근에 만약에 우리라는 영화를 봤어.
우리 같더라, 좋아 죽고 못살더니 하나씩 어긋나는 균열에서 서로 대화가 없어지더니 그냥 그대로 각자의 갈 길을 가더라.
다만 하나 달랐다는 건. 우리는 마지막에 헤어지자고 얘기를 했다는 거야.
헤어지는 과정을 보는데 눈물을 참지 못했어.
아마 지난날의 내가 아니면 네가 아니 그냥 우리가 보여서였나 봐.
만약에 우리 이랬다면 저쨌다면 하면서 쭈그려 앉아서 울 때에는 스크린을 제대로 못 보겠더라.
또 아버지가 편지를 남길 때에도 제대로 못 보겠더라. 우리 엄마가 그랬을 거 같아.
나만큼이나 끔찍하게 널 아끼셨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어.
언제든 집에 편하게 놀러 오라고 하는 말은 아마 진심일 거야. 내가 없을 때 편하게 와서 있다가 가.
우리 엄마 음식 좋아했잖아. 어느 순간 결혼한 부부처럼 우리 가족으로 흡수되는 너를 보며, 한 없이 좋았는데 헤어질 무렵에는 우리의 관계가 아닌 다수의 관계가 되어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 정말 한 점차이지?
난 요즘 잘 지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항상 걱정하던 것들이 잘 채워져 나가고 있어.
그래도 가끔 불안할 때면 괜찮아져 보려고 노력도 해. 운동도 잘하려고 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어.
멀어지고 나서 내가 너무 차갑게 잔인하게 나쁘게 대해서 미안해.
사실 그 미안한 마음이 커. 친구라도 되고 싶었는데 그건 내 과욕이었나 봐.
시간 덧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에 내가 있는 거니까 그건 정말 고마워.
마지막에 우리 이야기하던 날 조금 더 있다 가겠다 조금 더 이야기하겠다 조금만 더 얼굴 보겠다 하는 게 무슨 어려움이라고 조금 더 들어줄 걸 그랬나 봐. 가끔씩 네가 울던 그 얼굴이 떠올라서 미안해.
가끔씩 오는 연락에도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아 라는 생각에서 하는 행동들이 너에게 큰 상처일까 봐 걱정은 되면서도 물러지게 행동할 수 없어서 더 강하게 행동해서 미안해.
하지만, 되돌아갈 순 없고 우리는 돌아갈 타이밍을 한참을 놓쳤어.
우리에게 만약의 우리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했어.
제주에서 올라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빨리 집을 구했다면, 우리가 서로를 좀 더 들여다봤다면, 서로를 다 안다고 오만하지 않았다면, 서로가 서로를 당연시 여기지 않았다면 등 많은 되돌릴 시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만 모르고 있었나 봐. 나는 이걸 후회로라도 두지 않기로 했어.
그냥 앞으로의 사람에게 더 잘하기로 말이야.
만약에 우리를 보다가 행복했던 시절의 우리도 떠올랐어.
그 시절의 우리는 빛나기도, 젊기도, 찬란했더라. 처음 만난 날, 첫 기념일, 첫 여행, 처음 같이 살기로 한 날, 첫 월셋집, 첫 전셋집 그리고 다시 돌아오던 날까지. 참 많은 걸 함께 나눴더라고.
서로의 청춘과 시간까지 말이야.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많이 푸르렀던 거 같아. 그 젊음이라는 이유로 빛났던 것들이 더 이상 더 찬란하게 빛나지 않고, 푸르지 않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았어.
아마 그때부터였나 봐. 시들어가는 내가 보이고 시들어가는 것조차 모른 채 해를 비춰주는 너를 외면해리기 시작하고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게 말이야.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너무 두려웠어. 네가 없으면,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네가 없는 나는 안정적일 수 있을까.
나의 연인이자 절반인 너를.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너를. 습관처럼 너를 찾는 나를. 내가 내 인생에서 도려낼 수 있을까. 내 구석구석 박혀 있는 너를 다 뜯어낼 수 있을까.
정리를 시작하고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어. 끝끝내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겠어서 몇 번 망설인 적도 많았어. 내가 하는 선택이 실수가 아닐까 해서 말이야. 함부로 내뱉는 말이 아닌데도 그 말에 후회를 할까봐. 그 말에 무게감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말을 못했어. 헤어지는 것도 용기구나 하고 말이야.
그 언젠가 나에게 청혼은 네가 할 테니 기다리라던 날이 벌써 몇 년이 지났더라.
내가 한창 이제 우리도 결혼하는 게 맞지 않아?라고 주변 친구들이 결혼을 하던 시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시절 말이야.
내 얘기를 듣더니 나에게 청혼은 네가 하고 싶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었는데, 결국 이뤄지지 못했네.
어느 순간 난 결혼이란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어. 아마도 그 때의 난 그게 참 하고 싶었나 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하를 받고 싶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정받고 싶었나 봐.
그땐 겁이나도 둘이면 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이젠 이렇게 되어버렸네?
이게 아마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만약에 우리의 시점인 거 같아.
참 많이도 아등바등했어. 안정적인 삶을 함께 하고 싶어서.
월세를 탈출하고 싶었고, 전셋집에 가게 되어서 나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열심히 대출을 갚고 또 더 넓은 집, 더 좋은 집에 가서 잘 꾸미고 친구들도 부르고 우리 만의 성을 만들고 싶었어.
너와 내가 좋아하던 화분들을 잔뜩 깔아 두고, 불 피우면서 밤새 오손도손 떠들고, 퇴근하고 맛있는 밥을 같이 먹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도 보고 또 내기를 하면서 게임도 하고 말이야.
집에서도 놀게 한 천지다 하면서 놀고 떠들었는데 휴무가 맞는 날이면 늘어지게 자고, 그게 아쉬워 카페라도 갈까 혹은 산책이라도 할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밥먹고 좀만 쉬다 나가자 하다가 낮잠이 저녁까지 되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런 날들이 가득했는데,
쉬는 날이 고정적인 나에게는 너의 쉬는 날이 참 귀했어.
그 날만 손꼽아서 기다리기도 했거든.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밥해줘야지 맛있는거 시켜줘야지.
내가 사는 이유 이기도 했어. 먹는걸 보는게 행복했고, 잘 자는걸 볼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열심히 살면 또 내가 앞장서서 우리의 방향성의 키를 잡고 헤쳐나가면 우리가 행복해질 줄 알았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영원할 거라고도 자만했던 거 같아. 나도 놓친 게 많았어. 너는 어떤지가 궁금하다.
지난날의 우리가, 또 지금에서 돌아보는 그때의 우리가 너에게는 어땠을지 말이야.
마지막 대화를 하던 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너무나 다 행복했던 기억만 있다고 고맙다고 말을 하던 너에게 하염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만 보여서 미안해.
같이 바닷가에서 밥을 먹으면서 하염없이 멍때리던 날을 기억하냐며 자기가 행복해서 울 수 있게 그런 감정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눈물 밖에 없더라.
더 좋은 추억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네. 그리고 그런 행복을 공유했던 내가 마침표를 찍어서도 미안했어.
예전에 네가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내가 너에게 질려서 헤어질 거 같아라고 했었는데. 그럴 일은 없다며 신신당부하며 되려 뭐라했었는데, 이유가 어찌 됐든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네.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자고 한 말은 진심이야. 어머니 소식도 알려줘.
나도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할게. 그게 힘들다면 하지 않을게.
괜찮아지면, 우리 마지막으로 했던 약속. 영화 보기로 한 약속 그건 꼭 지킬게.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다정하게 또 내가 여유 있게 생각할 수 있게 알려줘서도 고마워.
또 내가 불안할 때 곁에서 지켜줘서 고마워.
고민과 생각이 많은 나를 말없이 지켜봐 줘서도 고마워.
덕분에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 거 같아.
고마운 것들만 기억에 남는 거 같아.
종종 들리는 이야기에 응원을 하고 싶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
내가 행복한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했고, 남은 날의 생일 끝까지 다 챙겨주기로 했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해.
나도 지난 10년 동안 너무 고마웠어. 좋았고, 즐거웠어. 행복이라는 거에 대한 기준점이 다 다르지만, 행복한 날들이 더 많았던 거 같아. 내가 많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 줘 고마워.
생일축하해,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