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쓰인다. 마음을 쓰다. 마음을 나누다. 마음을 더하다.
마음의 뒤에 붙는 서술어는 다 소비를 하는 표현이거나 셈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마음은 정말 쓰면 없어지는 걸까. 소비가 아닌 남을 수 없는 걸까 그런 표현법은 없는 걸까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을 전한다 라는 표현이 문득 생각났다.
마음을 전하는 일.
왜곡 없이 내 마음 그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뭐가 있을까?
애초에 서로의 마음이 양이 동일하지 않은 전제조건이기에 마음을 전하는 일이 마음을 나누고 더하고 쓰는 일이 되버린 걸까
그런다고 마음을 전하는 내가 스크루지처럼 이만큼만 써야지 더 아껴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상대방에게 아끼려고 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마음이 자원이라면 이 한정적인 마음을 어디에 얼마나 쏟아부어야 할지 차라리 셈이 될 텐데, 마음의 자원은 한정적이지 않고 사람마다 마음을 내어주는 파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때마다 그에 맞춰 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근래 들어 오랜만에 육지에 오기도 하고, 자주 봤던 친구들을 비롯하여 1년에 몇 번 볼까 말까 한 친구들까지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졸지에 랜선친구가 되어 버린 친구들을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는 것에 들뜨다 못해 방방거리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나는 표현을 잘못하기도 하고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라, 가끔 내가 하는 표현의 방식인 행동들이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런 혼란스러움이 나타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좀먹어지는 것이 아 이래서 소비와 셈으로 표현하는 건가 싶다.
원체 생각이 많은 탓인지라, 하나의 행동을 혼자 곱씹어 생각하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그럼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질려 관계를 놓아버릴 때가 있다.
괜한 생각이겠거니 오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결국 이 관계는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끝나버리는 관계인가 까지 가게 되면 그땐 정말 질리게 되는 거 같다. 마음을 표현하는 만큼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고 싶을 때에 부리는 표현이기 때문에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가 종종 있다. 정말 웃긴 건 그렇게 떨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고 연락이 오는 상황이다.
어이가 없지만, 또 그 연락이 마냥 좋아 다시금 연락을 하는 나도 웃기다.
제풀에 지쳐 질려버렸을 때는 아- 당분간 그냥 머리 식히게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말아야겠어.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느낀 뒤 다시 마음이 차오르면 또 연락을 하겠지 혹은 필요하면 연락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정말 뒤도 안 돌아보게 되는 거 같다.
사람마다 사람과 어울리는 속도가 다른데 나는 보통 빠르게 타올랐다가 천천히 식는 거 같다. 단지 내가 꽂히는 사람들이 천천히 타오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문제가 발생하는 거 같기도.
어렵다 아직도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건. 내 마음을 왜곡 없이 잘 전달하고 싶은데, 참 어렵다.
이럴 때이면 사람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나도 흑백논리처럼 관심의 유무가 극명히 갈리니 또 뭐 부러워할 필요가 없나 싶기도 하고, 정의하기 모호하다. 그냥 사람에게 관심이 아예 없었으면 싶기도 하다.
60살이 되면 아니 그보다 나이가 더 먹으면 좀 더 유연해지려나 좀 더 능숙해지려나.
내가 빨리 늙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다.
늙어서도 청남방이 잘 어울리기를 니트조끼가 잘 어울리기를 기대하며 쇼츠 팬츠와 셔츠를 단정히 입고 허리 꼿꼿이 세워서 다닐 수 있는 그런 노년을 기대하며 오늘도 마음에 쌓인 먼지들을 훌훌 털어내고 잠들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