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관계에는 그 관계의 형태가 어떠하든 관계든 끝이 있다.
사소하게는 다툼으로 인한 손절, 헤어짐 무겁게로는 죽음까지 어떠한 형태이든 끝은 있다.
끝.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지막을 뜻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부정적인 말들이 더 많이 파생된다. 그렇담 긍정적인 말들이 파생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시작, 새로운 ㅇㅇ, 화해, 결혼이 있으려나.
요 근래 나에게 관계에 있어 생기는 끝과 시작은 결혼과 화해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관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 발전인 결혼과 나의 오랜 친구와의 사소한 서운함으로 시작된 다툼의 화해.
이것이 요 근래 가장 큰 관계의 화두이다.
먼저, 다툼을 말하자면 전 연인과의 끝에 있어서 나는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연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내 얼굴의 침 뱉기와 같은 행위라고도 생각을 했고, 내가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내 발언에 의해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또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흠이 나고 필터가 씌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서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결혼 3n연차인 엄마도 존경을 한다고 했다. 사실 존경할 거리가 아닌 그냥 내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건 앞으로 함께하는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말을 못 하는 사람인 거다 나는
하지만, 내 친구는 헤어짐에 이유를 네가 나를 깊게 생각을 안 하는 거 같다 등 나한테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며 서운해했다.
미안하지만, 그 친구에게 오히려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연인과의 관계가 많이 쌓인 상황에서 오다가다 만날 수 있는 지근거리에 상주해 있고, 내가 뱉은 그 말이 서로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말을 하지 못했고, 사실할 마음도 없었고, 그냥 두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나 라는 불만도 있었다.
그래서 헤어짐을 납득하지 못하는 친구가 아니 정확히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친구가 나의 새로운 만남에 반감을 가졌고, 그로 인해서 사소한 다툼이 생겼다.
의견차이야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그 친구가 이해를 못 하는 상황에서 날 선 말로 나에게 하는 말들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개인적으로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혹은 그 친구가 이해를 못 할 행동을 하는 상황에 있어도 나는 이해는 안 가지만 존중을 한다. 너의 선택이니까
그리고 또 네가 그 선택을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는 무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설령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서는 비난을 받을만한 일도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넘어갔었다.
하지만 친구는 자기의 기준의 빗대어 공격적으로 몰아가는 나를 보면서 너무 충격이 앞섰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고, 친구의 이사로 시작된 대화는 서로의 오해를 푸는 대화로 이어졌다.
내 인생에서 엄마 다움으로 많이 싸운 이 친구는 서로 많이 알았다 싶으면서도 또 세월이 흐르면서 생기는 다른 면에서 서로 충돌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상 서운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고 또 이걸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도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구든 아무에게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나는 그 이야기가 전연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고 생각해 주면 안 되나 싶긴 하다.
헤어진 이유를 말할 때면 좋지 않은 마음에 아직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입장에서 하는 말임으로 이게 필터링이 돼서 들릴까. 나의 입장에서만 들으면 온전히 나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인지를 할까.
그냥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지 나와 더 이상 함께할 인연이 아닌 것뿐이지 이 말이 제대로 들릴까 라는 생각에 말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또한 그에게 남은 감정이 아닌 헤어짐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감정이 아직은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그걸 자극하는 무언가를 만나면 눈물이 차오른다. 최근에는 만약에 우리가 그랬던 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오랜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조만간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다행히 끝이 아니지만, 끝이라고도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관계가 또 한층 발전했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결혼.
맞다. 사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쓰고 싶어서 앞에 주절 거린 거다.
결혼.. 어쩌면 멀고 먼 이야기, 어쩌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 또 어쩌면 가까운 일일 수도 있는 이야기.
사실 가늠할 수가 없는 그런 단어다.
내 멋대로 내 뜻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나 혼자서는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연애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의사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늘 있다.
또 인생에서 가장 크게 감정이 응집되어 터져 나오는 행사, 나뿐이 아닌 가족, 친구들의 감정 또한 나와 동화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결혼. 정식으로 부부가 됨을 알리는 의식 혹은 계약이라고 쓰인다.
의식이자 계약이라 개인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앞으로 둘만 바라보고 살 것이라는 계약.
혹은 사람들 앞에서 이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하는 의식이라고 풀이된다.
단어에서도 느껴지듯 둘에서 다인으로 퍼지는 계약이자 의식이기 때문에 결코 결혼이라는 말은 쉽게 내뱉지도, 쉽게 내뱉어서도 안된다고 생각을 늘 한다.
가벼이 결혼할까?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을 어린애 소꿉놀이 하듯이 책임감없게 뱉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기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의 총집합이라고 생각하는 세리머니.
가깝게는 당사자와 부모님, 가족부터 멀게는 친구까지 모든 이해관계들이 하나가 되어 모이는 그런 의식이기 때문에 또 준비해야 할 것들도 한 가득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써야 할 건 왜 그렇게 많은지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 옆에서 듣기만 해도 지치는 행사는 맞다.
하지만 그건 결혼+식의 이야기이고 나는 그런 허례허식과 체면치레와도 같은 결혼식이 싫어 온전히 결혼을 염두하여 생각을 한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나름 구체적이라면, 내가 어떤 기반을 마련했을 때,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 때가 안정적이겠다는 수치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
관계적으로 봤을 때는 두 당사자를 놓고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성과 목표가 같아질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목표의 지향점이 같을 때 한 목표를 두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있어 그 목표에 서로가 당연시 포함이 될 때에 가능한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당신이 꼭 포함이 되어야만 서로의 곁에 항상 서로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생기는 것이 상대에 대한 확신이고,
그 확신에 비롯해서 연장선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 확신을 갖기 위해서 동거라는 선택을 요즘 많이들 한다고 한다.
이 사람이 나랑 앞으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고찰과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실 이건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확신을 갖기 위한 행위는 아니라고 보는 주의다.
어떤 사람에게 내 인생을 함께 해도 되는지 안 해도 되는지를 충분한 대화로도 협의를 보지 못한 채 살아보면서 이 사람에게 확신을 가져도 되는가에 대한 평가와도 같은 동거를 시작하고 그 결론이 도달하지 않거나 자격이 미달이라고 생각이 들면 헤어지는 것이 과연 확신을 얻기 위한 동거일까?
그래서 그런 무의미한 동거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요즘에 만들어진 내 결혼철학 중에 하나이다.
서로가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 서로에 방식에 따라 다를지언정, 서로가 확신을 갖고 결혼이라는 제1차 목표지향성에 입각을 했을 때에 하는 동거야 말로 같은 곳에서 생활을 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또 동거를 하게 되면 서로가 함께 한다는 그 설렘에서 같이 생활하는 공간인 집을 얼마나 열심히 아끼고 꾸미겠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남겨지면 남겨진 사람을 얼마나 괴롭겠는가 또 함께한 시간들이 훨씬 더 짙어져 있는 상태에서 회복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감정의 소비가 두려운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자꾸만 결혼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고 그게 심화가 되면서 입에 맴돌고
우습게도 결혼이라는 단어를 장난처럼 슬슬 입에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꼭 후회를 하게 된다. 부담스럽겠지?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면 싫겠지?
그렇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걸.
맞다 내가 항상 마음과 몸이 앞서나간다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거기도 하다. 너무 커지는 마음에 같이 살고 싶다로 파생이 되는 거 같고, 그걸 결혼이라는 단어를 써서 입밖에 내뱉는 게 몸이 앞서 나가는 것 같다.
되려 누군가 나에게 반문으로 확신이 있어?라고 한다면 확신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드는 게 정말 전형적인 확신인지는 그 확신에 대한 정의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다고 대답을 할 수 있고 그 근거도 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연애 초기의 뽕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기에 더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의 마음으로는 결혼을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가 저장을 해놓은 결혼에 대한 고찰이었다.
한 주가 지난 지금 나는 마음이 앞서 미숙하게도 우리끼리는 가청혼이라고 부르는 청혼을 했고, 승낙을 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그 미래를 위해서 서로 바쁘게 움직이기로 했다.
사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도 많고, 헤쳐나가야 할 관문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게 참 기쁘고 설레고 행복한 일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도 맞고 또 더 이루어야 할 것도 많아졌지만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면 그 마저도 너무 기쁘다.
어느 순간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던 사람이 앞으로도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는 것. 또 그 미래에 당연히 함께 하게 됐다는 것 또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 나에게 확신만 가득 차는 경험을 내 인생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주었다는 걸.
그리고 당신의 미래에 내가 함께할 수 있어 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꼭 말을 해주고 싶다는 걸.
그 언젠가 정말 멋들어진 청혼으로 당신과 내가 함께할 미래의 첫 시작을 하고 싶다는 걸.
당신이 내게 주는 확신은 내게 용기가 되어 내가 더 큰 힘을 얻고 나아갈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준 다는 걸.
당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하루를 웃으며 시작하고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는 아주 큰 원동력이라는 걸.
그 외에 말은 나중에 잘 적어서 나중에 온전히 당신만을 위해서만 보여주겠다는 걸.
말로 표현을 한다 하지만 잘 못해 미안하고, 이렇게 글로나마 표현하는 나를 내 글이 최고라면서 좋아해 주는 당신이 있어 또 글을 열심히 쓰게 된다는 걸
마지막으로 붙이며 오늘의 글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