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지능인 사회에서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다정을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낯간지러움과 부끄러움이 몰려드는 부끄러운 말을 할 때면, 얼굴에 드러나는 화끈거림과 관리가 안 되는 표정에 놀림을 받기도 하고, 그 놀림에 얼굴이 더 심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행동으로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살면서 다정하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살면서 다정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 시작하면서 내가 다정한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나름 어필을 할 때에는 저 별명이 이다정이에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땐 정말 철면피를 깔고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거나 다가가고 싶을 때 종종 이러는 것 같다.
다정함을 생각하고 설계해서 누군가에게 다정을 보이는 편이 아니라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왜 한없이 이런 친절과 다정을 베푸는 거지? 에 대한 오해를 사는 거 같다.
사실 그 오해를 나한테 대놓고 드러내진 않고 갚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되려 부담이 될까 하는 마음에 더 조심스러워지는데, 그래도 그런 부담을 안 가지는 선에서 행동을 하려고 사소한 것들을 더 기억하게 되는 거 같다.
아마 나는 나의 기억력이 나를 다정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는데 엄청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기억력 덕분에 누군가를 챙겨주고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는 이미지가 오래 남아서 더 알맞고 딱 맞는 선물을 해준다거나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아마 다정함의 기준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게 아닌가 싶다.
의도하고 다정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요즘 시대에 다정은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하는지라 좋은 무기를 장착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또 요새는 삐쭉이가 내가 다정해서 좋다고 하니 다정이라는 말이 사랑스러워질 정도이다.
사실 행동이나 말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건 투박한 가정에서 자란 내가 부모님에게 듣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남에게 하면서 시작이 된 거 같다.
배려라고도 하고 다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자잘한 신경쓰임이 모여 습관처럼 지금의 내가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맏이라는 사회적 포지션이 그렇게 만들 걸 수도 있겠다 싶다.
사람은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나도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연인 관계는 그게 더 큰 거 같다. 과거부터 현재의 삐쭉이까지 나는 다정함이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 되었던 것 같다.
흔히들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기준을 다정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모호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정확한 기준이 있는 나는 현재의 삐쭉이와의 연애가 너무나도 좋다.
내가 좋은 만큼 삐쭉이도 좋았으면 좋겠어서 더 기울이고 살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 보니 본인이 힘들지 않게 텐션을 잘 유지해야겠다.라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지금까지는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짝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더 다정해지고 더더더더더더 다정해지고 싶다.
그게 어떤 능력치를 끌어올려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한 사람만의 편으로써 더 특별하게 다정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