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희망고문의 단짝은 자책이다.
내가 뭘 잘못했지. 혹은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혹은 어디가 아쉬워서 이런 걸 알지 못한 채 나도 모로는 재기를 당하고 있다.
이리 재지고, 저리 재지고 하다 보면 결과가 나온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누군가의 입방아에 찧어지고 있다. 사실 그런 희망고문의 결과가 좋다면 얼마든지 찧어져도 좋다.
그래서일까 사춘기처럼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맞닿을 갱년기처럼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취준생을 어떻게 보냈던가. 예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보다도 더 보잘것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어떻게 취업을 했었지. 아 맞다 운이 작용했지.
나는 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를 했다.
사실 운이 좋기도 했다. 지금은 그 운이 회사들을 걸러주는 거라고 생각을 해야 할까?
사실 도무지 좋게 생각을 하려 해도 좋게 생각이 안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느 날에는 그냥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몸이라도 굴리면 차라리 잡생각은 덜 날 텐데, 그리고 정성을 들인 만큼 활짝 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정성에 어느 정도 보답을 하는 아이들이니까.
그냥 사실 내가 부지런하면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따라오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졌다.
배워가는 시기라고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 배우고 공부를 해야지 싶다가도 이렇게 희망고문이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리면 맥이 풀린다.
원인을 찾게 된다. 물론 나에게서 찾게 된다. 생각을 하다 보면 그냥 내가 문제인가 싶다.
지겹다 못해 지친다. 다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돈도 필요 없고, 사람도 필요 없고, 왜 자연인들이 산에 들어가는지 알 거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난 자연인도 못되고 그럴 생각도 없고 현대문명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멀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참 나의 존재 자체부터가 역설이고 모순 같다.
만사가 지겹고 시끄럽고 예민해질 때는 그냥 모든 것을 셧다운 하고 어딘가에서 하염없이 멍을 때리고 싶다.
그곳이 암자여도, 바다여도, 불 앞이어도 혹은 그냥 들판이어도 상관이 없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다.
흐린 날씨마저 좋다. 그냥 내 감정을 온전히 배출하고 하염없이 멍을 때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온전히 나를 위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책 하나와 펜 한 자루는 있으면 좋겠다. 나의 감정을 나의 현재를 기록을 하고 싶을 거 같긴 하다.
모든 것에 계산적이 어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도 싫다.
어른이 된다는 건 숨을 쉬는 모든 것이 돈이며 그 돈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어른일까.
염세적이게 된다. 한 때는 염세주의자인 나 자신을 숨기려 열심히 웃었는데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염세주의가 튀어나온다.
혹자는 센티해졌네라고 하는데 사실 이게 그냥 나인걸.
희망고문도 고문이라도 고문을 당하다 보니 다시 염세주의자가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더 짙어지는 거 같기도 하고, 티가 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고 피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톡 하고 터져 버릴 거 같아 걱정이다.
지극히도 개인주의인 내가 이타주의인 척하고 어울리고 있는 이 모든 시간들이.
또 지레겁을 먹고 내 방어를 치고 있는 요즘이.
방구석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냥 모든 게 지겹고 지친다. 고문에서 벗어나고 싶다.
누구도 눈치를 주고 있지 않고 옭아매고 있지 않지만 그냥 내 상황자체가 나를 옭아맨다.
지겹고 지친다. 편안해지고 싶다.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