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짜쭈엔, 콩 카페 - 기찻길 마을 - 쏘이엔, 지앙 카페 - 성요셉성당
하노이 2번째 하루의 시작. 오늘도 하루 종일 30도에 가까운 습하고 더운 날씨가 예상된다. 어제보다 넉넉하고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랩 택시를 호출한다. 하노이에서 가장 유명한 쌀국수 가게 중 하나인 퍼짜쭈엔 Pho Gia Truyen에 오전부터 찾아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특별히 중요한 건지 점심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두 번째 날 아침 식사를 소고기 쌀국수로 정하게 된 이유이다.
가게 앞은 명성에 걸맞게 기다리는 사람들과 주차된 오토바이들로 발 디딜 틈 없다. 터무니없이 작은 간판임에도 이런 북적이는 모습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줄을 서서 주문과 계산을 하고 그릇을 받아 자리에 앉는 식인가 보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온다.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가깝게 보인다. 백색면을 한 손에 잡아 넘겨주는 청년, 육수를 퍼담는 아저씨와 고기를 담당하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듯한 많은 고기들이 어디에도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만든다! 1 Pho Tai Nam을 외치면서 50,000동을 건넨다. 곧 넘칠 만큼 푸짐하게 담긴 소고기 칼국수 Pho Bo 가 나온다. 그릇을 받아 들고 밖이 보이는 빈자리에 앉는다.
완전히 익혀 얇게 썰어진 고기와 반쯤 익힌 두툼한 고기가 듬뿍 들어있다. 쌀국수가 그래 봐야 뭐가 다르겠냐는 가벼운 생각을 하며 국물부터 마셔본다. 고기를 대체 얼마나 많이 넣어서 육수를 냈는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진한 고깃국의 맛이 난다! EBS 채널에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맛있다’ 던 백종원의 말이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맞는 말이었다. 다만 찜닭에 들어가는 당면처럼 넙적한 형태의 면이라 면 자체는 오히려 한국의 그것이 나에게 잘 맞는 듯하다. 일단 이것으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장 궁금했던 맛은 해결한 셈이다.
남은 여행 일정을 수정 보완할 공간이 필요하다. 마침 어제 이 시간 즈음 갔던 콩 카페의 다른 체인이 보인다. 바깥 테이블보다 손님은 적고 온도는 약간 시원한 실내에 앉기로 한다. 이번에는 카페 쓰어다로 선택. 아무래도 코코넛 커피의 부드러움보다 이 쪽의 강한 맛이 나에게 잘 맞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오늘 일정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 원래 계획은 구시가지 36 거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니 몸이 일단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정신없는 경적 소리와 매연, 오토바이와 차에 가려져 큰 소득을 올리지 못한 스냅사진들, 하루 종일 습한 동남아 날씨까지. 다시 손해 보는 장사를 하려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문득 어제 가장 조용했던 기찻길 마을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지금 카페와도 가까운 거리인 것 같다. 레일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곳 넘어서의 풍경이 궁금하다. 하이랜드 커피와 다르게 에어컨이 없는 콩 카페에서 휴식은 이렇게 끝. 그 사이 익숙한 한국말이 자주 들려온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노이 기찻길 마을을 두 번 방문한다. 서쪽 바딘 지역에서 걸어왔던 어제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기차 레일 양쪽으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마치 또 다른 관광 명소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더 평범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구시가지 주택의 모습과 많이 닮은 듯하다. 아니, 하노이의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것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휘어지는 레일을 따라 집들도 역시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찻길 마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쪽 입구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주말에도 조용하다. 카페나 소품샵 같은 편의시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관광객의 신분을 한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하다. 집 앞이 곧 철로 옆 자갈이 되는 좁은 곳에서 가물치 튀김을 요리하는, 꽃을 가꾸는,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는 그런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보인다.
어느 집에서 나온 건지 솜사탕 같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노련한 자세로 건너편을 관찰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꼬마와 함께 레일에 끼인 풀을 뽑고 있는 엄마의 모습. 그 옆에는 아까 그놈이 시루떡처럼 축 처져 있다. 아마 이 집에서 키우는 녀석이었나 보다. 하노이에서 기대하지도 앉았던 평화로운 장면이다.
어디까지를 기찻길 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레일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가정집이 줄어들고 창고와 숲의 비율이 높아진다. 아마 여기서 끝나는 건가 보다. 기찻길 마을의 모든 것들이 희미해진다. 반대편 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 끝엔 분명 롱비엔 역이 있을 것이다. 기차가 운행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삶이 언제나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기찻길 마을에서 뻗어 나온 철도와 인접한 구시가지의 가장자리는 중심부에 비해 도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 거리의 얼굴을 조금 더 먼 자취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전체적으로 숨통이 트이는 느낌. 노란색 꽃 장식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장례식장 근처인가 보다.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가니 어제 들렸던 라 시에스타 스파와 분보남보가 나오고 아침을 먹었던 퍼짜쭈엔도 나온다. 구시가지 36 거리는 복잡하게 엉켜있는 거미줄과 같은 기분이 든다. 서쪽으로 계속 걸으면 쏘이엔이 나올 것이다.
정신없는 구시가지 속으로 들어가 서쪽 끝까지 걷는다. 점심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베트남식 찰밥 전문점 쏘이엔 Xoi Yen 에 도착한다. 식당 안 테이블은 여전히 낮고 의자는 익숙한 플라스틱 의자이다. 모둠 찰밥은 아마 메뉴판에서 가장 윗부분에 있는 것 같다. 메뉴 이름만큼 다채로운 비주얼이 아주 마음에 든다.
노란 찰밥 위로 닭고기와 돼지고기, 육포, 계란 등의 고명이 푸짐하게 올라가 있어 먹음직스럽다. 특히 튀긴 계란과 생김새가 실과 같은 말린 돼지고기가 맛있는 편. 마늘 후레이크를 올린 쫀득한 찰밥이 내 입맛에 아주 잘 맞다. 이상하리만큼 여행 기간 내내 배고프지 않은 이번 하노이 여행에서 쏘이엔의 모둠 찰밥만큼은 끝까지 다 먹은 유일한 베트남 로컬 음식이다. 추가로 주문한 베트남 두유는 색깔만큼 담백하고 고소하면서 달지 않아서 좋은 맛이다.
카페 지앙 Cafe Giang이라는 이름 대신 에그 커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메뉴가 있는 오래된 카페. 간판에 쓰인 Since 1946이라는 글귀 뒤로 벽에 걸려있는 흑백 가족사진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두침침한 1층의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고 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환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벽을 타고 흐르는 식물이 가득한 좁은 계단을 오른다. 2층 안쪽도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계단 근처의 채광이 좋아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테이블과 의자가 낮다. 그래서 벽에 대충 걸어놓은 듯한 다양한 크기의 액자들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다 먹은 커피잔과 해바라기 씨로 어질러진 빈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곧 젊은 점원이 테이블을 치우며 주문을 받는다. 따로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가장 유명한 에그 커피로 선택한다.
온도를 유지하며 마실 수 있게 따뜻한 물이 담긴 상태로 에그 커피가 나온다. 도대체 계란을 넣은 커피 맛은 어떤지 궁금해서 일단 그대로 입에 대고 커피를 쏟아 넣는다. 카페 쓰어다 못지않은 달콤함이 확 올라온다. 진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넣은 듯하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앞에 놓아져 있다면 계란이 들어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저로 휘젓다가 위로 끌어올리면 확실히 끈적한 농도가 느껴진다. 아래층에서 계산을 하고 나온다.
이끼가 많이 껴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녹색 호수. 하노이의 다른 거리와 마찬가지로 호안끼엠 호수 주위에도 울창한 나무들이 숲처럼 줄지어 있다. 유난히 힘이 빠진 몇몇 나무들이 호수에 빨려들듯이 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울에서 수평으로만 한강을 산책하던 나로서는 경치가 완전히 바뀌는 원형의 산책이 상당히 색다르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 호수 안쪽으로도 바깥쪽으로도 호안끼엠 호수에는 여유로움이 넘쳐흐른다.
서호에 쩐꾸옥 사원이 있고 비슷한 상황으로 호안끼엠 호수에는 응옥선 사당이 있다. 호안끼엠 호수와 응옥선 사당을 잇는 빨간색 테 훅 다리는 낮이건 밤이건 항상 인기가 많다. 다리 끝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료 30,000 VND을 구입. 응옥선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산책에서 관람으로 잠시 여행 태도를 바꾼다.
하노이 관광명소 중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관람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규모가 작다. 호수 한가운데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하게 발견한 응옥선 사당의 장점이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실제로 발견되었다는 박제된 거북이와 빨간 사찰보다는 그 옆에 물기를 잔뜩 머금은 가지가 많은 나무나 정문 밖에 묵직하게 세워진 벽화들이 오히려 더 멋지게 느껴진다.
응옥선 사당에서 나와 호안끼엠 호수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서쪽의 성 요셉 성당으로 가는 길. 우선 차량 통행을 막아두어서 소음이 없다. 3~4층 정도 높이의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거의 뒤덮고 있고 사람들도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유원지에 있을법한 카페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호숫가에 앉아 잠시 동안의 느긋한 오후를 보낸다.
하노이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고딕 양식의 성당은 충분히 매력적이며 그에 비례하여 관람객의 숫자도 많다. 중앙에서 정직한 시선으로 성당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몸짓을 가진 신이 내려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한눈에 담기 힘들 만큼 웅장하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베트남의 프랑스식 성당 앞에서 웨딩 사진을 비롯하여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고 있다. 그중 한국인들도 여럿 느껴진다. 서로 정성들여 찍어주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전날 중국 관광객이 내게 부탁한 것처럼 이번엔 내가 그들에게 사진을 요청을 해본다. 흔쾌히 허락 후 허리를 굽혀가며 로우 앵글로 알아서 필터까지 넣어서 찍어주신다. 역시 사진은 한국인이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반가운 한국말
하노이에 사는 한국인을 만나러 간다.
3월 대만 여행이 여러 모로 불가능해 대신 베트남 하노이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촬영이 주목적이라 제법 활동적인 여행에 속하지만, 가이드북이나 TV에 소개된 유명한 곳도 자주 다녀와서 하노이 여행 가실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 퇴근 후 인천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을 타고 새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달러를 베트남 달러로 환전하고 비엣텔 유심칩을 구입했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에어비앤비에서 3박 5일간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여행 당시의 감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재형의 문체로 작성했다.
1일차
하노이 공항 - 못꼿 사원, 바딘 광장 - 콩 카페 - 탕롱 황성 - 기찻길 마을 - 마담 히엔 - 하이랜드 커피, 백종원 카페 - 구시가지 36 거리 - 바잉미 25 - 탄니엔 산책길, 쩐꾸옥 사원 - 서밋 라운지 - 라 시에스타 스파 - 분보남보
2일차
퍼짜쭈엔 - 콩 카페 - 기찻길 마을 - 쏘이엔 - 지앙 카페 - 호안끼엠 호수, 응옥선 사원 - 성요셉 성당 - 하노이 문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트릴 루프탑 카페 - 꽌안응온 - 빈민 재즈 클럽
3일차
하노이 에어비앤비 - 오바마 분짜, 퍼 틴 - 오페라 하우스 - 라 벨르 스파 - 카페 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롯데호텔 팀호완 - 하노이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