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 탄니엔 산책길, 서밋 라운지 - 라 시에스타 스파 - 분보남보
구시가지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 서호 Ho Tay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다. 사실 바다처럼 넓은 호수라는 것은 한강과 제주에 익숙한 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서호의 우측 가장자리를 보는 순간 생각은 달라진다.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니 탄니엔 Thanh Nien이라고 부르는 완만한 S자 형태의 길이 서호를 가로지른다. 그로 인해 오른쪽의 작은 호수는 쭉 박 Truc Bach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려지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탄니엔 산책길에 마치 혹이 붙은 것처럼 작은 2개의 섬이 각각 서호와 쭉 박 호수 방향으로 붙어있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환경이 이 길을 하노이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길로 만들었나 보다. 먼저 쭉 박 호수를 바라본다.
강의 면적이 서호보다 상대적으로 작아서인지 강 위에 떠 있는 오리배를 제외하면 호안끼엠 호수의 풍경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듯하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를 깔아놓은 채 길거리 음식을 팔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하노이 시민의 모습들. 그 사이로 울통을 벗은 남자가 이어폰을 낀 채로 쏜살같이 지나간다. 반대편 서호는 이쪽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다.
생각대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한강보다 훨씬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평선 끝에는 흐리지만 확실한 문명의 존재가 보인다. 그 사이에 떠 있는 작은 레저용 1인용 보트만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곳에서 미비하게나마 현실의 축으로 기울게 만든다.
호수 가장자리는 나뭇잎이 물에 반사되어 물결에 따라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마치 생동감 넘치는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니 덥고 습한 날씨에도 머리 속만큼은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은 상태이며 해는 아직 오늘의 할 일을 성실히 이행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 로맨틱이라고 부를 만큼 결정적인 어떤 것이 없다. 무드를 잡기 위해선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조금씩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던 서호의 상징적인 사찰이 이제 완벽한 자태를 내보인다.
쩐꾸옥 사원(Chùa Trấn Quốc, 鎭國寺)은 마치 중국 본토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 외관이 화려하다. 오전에 보았던 탕롱 황성의 자연스럽게 빛바랜 색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호안끼엠 호수의 응옥썬 사원과는 다르게 이곳은 무료입장이다. 사원이 호수 위에 있다는 점과 작은 규모. 큰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왜 입장료 체계는 다른 걸까? 오른쪽 문을 통과하면 비슷해 보이는 작은 사당이 보인다.
사원 내부에도 여전히 관람객들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참배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기념사진을 따라 찍기도, 절을 따라 하기도 예매한 노릇. 발 둘 곳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사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쩐꾸옥 사원을 대표하는 11층 불탑은 멀리에서도, 가까이에서도, 경외감을 갖게 한다.
탄니엔 산책길이 끝나가자 양쪽의 전경들이 다시 가깝게 보인다. 하이랜드 커피 체인점처럼 호수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밀접해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이보다 훨씬 높은 곳이다.
구시가지 거리와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Pan Pacific Hanoi 호텔의 최상층으로 이동하면, 하노이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길을 조금 더 멋지게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한껏 격식을 차린 복장의 직원들이 인사를 건넨다. 써밋 라운지 Summit Lounge 의 오픈 시간은 오후 4시부터지만 아직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흡연석인 야외 테라스도 텅 빈 상황. 흐린 날씨 덕에 멀리 있는 빌딩들의 디테일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방금까지 걸러온 산책길은 문제없이 잘 보인다!
써밋 라운지는 칵테일과 샴페인 등을 즐길 수 있는 바(Bar)지만 지금과 같은 이른 시간에는 특별히 카페 메뉴도 가능하다.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한다. 적당히 식혀서 한 입에 들이키니 오전의 코코넛 커피나 오후의 카페 쓰어다와 달리 배려 없는 강한 쓴맛이 그대로 올라온다. 이것이 내가 에스프레소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커피와 함께 나온 초콜릿 2개를 다 먹어도 아직 탄니엔 산책길의 가로등과 쩐꾸옥 사원의 조명은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다른 곳을 둘러봐야겠다. 써밋 라운지의 또 다른 뷰 포인트는 쭉 박 호수 한켠에 있다. 처음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을 때 낮은 건물들이 섬처럼 쌓여있는 듯한 독특한 풍경을 보고 호치민 대신 하노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최초의 하노이는 이런 이미지였다.
그럼 이 사진은 어디서 찍었을까?라는 물음에 나는 고층빌딩보다는 자연스럽게 높은 산을 연상했고, 베트남 사파와 같은 고산지대의 사진이 하노이로 잘 못 표기된 건 아닐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 곳은 하노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비록 그 사이에 높은 빌딩이 몇 채 더 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6시 16분. 가로등과 조명이 일순간에 켜진다. 더 가깝게 보이는 작은 사원에서부터 여전히 차보다 많은 오토바이가 활보하는 도로와 길을 건넜던 횡단보도, 다른 얼굴을 내보인 쩐꾸옥 사원. 해와 달이 바뀌는 시점이 되자 걸으면서 보았던 풍경의 왼쪽과 오른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완전히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하늘과 땅의 색 변화에 주목해본다.
서비스료 5%와 부가세 10%를 포함하여 총 138,600 VND을 계산하고 내려간다. 잠시 로비에 앉아 그랩 앱을 통하여 택시를 호출한다. 이제 지친 몸을 위한 시간이다.
제대로 밤이 찾아왔고 몸도 제대로 피곤해진 상태. 남자 사람 혼자 사진 여행과는 다소 맞지 않는 일정을 소화하려 한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마사지를 안 받고 그냥 가는 건 제주도에 와서 바다를 안 보고 가는 것과 같다. 영어가 잘 통하면서 쾌적한 환경을 기대할 수 있는 라 시에스타 스파 La Siesta Spa로 미리 예약해두었다. 예약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한다. 정장 차림의 짧은 커트를 한 여직원이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아 있으니 곧 물수건과 차, 간단한 과자가 나온다. 솔직히 그다지 맛있는 편은 아니다. 이 정도로 환영한다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간단한 체크 폼을 통해 마사지 강도와 오일을 선택할 수 있고 추가로 어떤 부위에 더 신경을 쓰면 좋은 지도 체크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Relaxation treatment 90 Min으로 강도는 Strong(그다음으로는 Very Strong이 있다), 오일은 Tamaru Oil과 Cajeput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의 단독룸으로 들어간다. 마음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차분한 조명 아래 족욕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서비스를 받는다. 라 시에스타 스파 마사지, 첫 동남아 마사지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세심한 배려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근육을 다룰 때마다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체크한다. 마사지의 강도도 아주 적당하다. 90분이라는 시간도 오늘의 노곤함을 달래주는 데에는 적절한 시간이다. 온라인 예약이란 명목으로 10% 할인을 받아 927,000 VND, 한화로 약 5만 원 안 되는 가격으로 지불하고 나온다. 다음에는 핫스톤이란 것으로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녁은 라 시에스타 스파 근처에 있는 분보남보 Bun Bo Nam Bo에서 먹기로 한다. 이 곳은 가게 이름과 똑같은 분보남보라는 비빔국수가 유명하다. 여느 하노이 집과 마찬가지로 보기보다 내부가 길고 손님들도 많다. 한국인들도 자주 보인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연잎쌈밥을 옆에 두고 먹고 있다.
자리에 앉아 어떻게 주문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테이블 앞으로 접시 하나가 놓인다. 여기서는 무조건 분보남보는 주문해야 하는 건가 보다. 추가로 사이공 비어 1병과 Dumpling Cake라고 하는 사이드 메뉴를 주문한다. 소스 통과 젓가락이 꽂혀있는 테이블을 보면 작년 고독한 미식가 여행이 떠오른다. 우선 분보남보는 땅콩 가루와 숙주, 숯불 향이 나는 고기, 달콤한 소스까지 맛이 없을 수 없는 구성이다. 쌀로 만든 면 아래에는 생각보다 소스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처음에 왜 수저를 함께 내주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오후 늦게 반미 샌드위치를 너무 늦게 먹어서인지 금세 배가 부르다.
사이공 비어는 산 미구엘 병처럼 주둥이가 낮아 귀여운 인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별 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라거 맥주의 맛이다. 그런가 하면 기대도 하지 않은 덤플링 케이크는 확실히 맛있다. 일단 여러 개가 담겨있는 그림과 다르게 그릇에 달랑 1개만 놓여 나온 모습이 우습다. 한입 베어보니 담백하면서 적당히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아마 버터나 우유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다. 홍콩 이순 밀크 컴퍼니의 우유 푸딩처럼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다시 구시가지의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낮의 모습과 다르게 차량 통행을 모두 막아둔 상태. 주말이 시작된 것이다. 거리로 나온 인파 사이로 야광 로켓이 날아간다. 푸드트럭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들과 버스킹 공연의 익숙한 장면들과 참여하고 싶을 만큼 활기찬 하노이 밤. 호안끼엠 호수에서 오페라하우스 근처의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모든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스쳐간다.
무더운 하루
내일은 괜찮을까?
3월 대만 여행이 여러 모로 불가능해 대신 베트남 하노이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촬영이 주목적이라 제법 활동적인 여행에 속하지만, 가이드북이나 TV에 소개된 유명한 곳도 자주 다녀와서 하노이 여행 가실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 퇴근 후 인천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을 타고 새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달러를 베트남 달러로 환전하고 비엣텔 유심칩을 구입했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에어비앤비에서 3박 5일간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여행 당시의 감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재형의 문체로 작성했다.
1일차
하노이 공항 - 못꼿 사원, 바딘 광장 - 콩 카페 - 탕롱 황성 - 기찻길 마을 - 마담 히엔 - 하이랜드 커피, 백종원 카페 - 구시가지 36 거리 - 바잉미 25 - 탄니엔 산책길, 쩐꾸옥 사원 - 서밋 라운지 - 라 시에스타 스파 - 분보남보
2일차
퍼 찌아 쭈엔 - 콩 카페 - 기찻길 마을 - 쏘이 이엔 - 지앙 카페 - 호암끼엔 호수, 응옥썬 사원 - 성요셉 성당 - 하노이 문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트릴 루프탑 카페 - 꽌안응온 - 빈민 재즈 클럽
3일차
하노이 에어비앤비 - 오바마 분짜, 퍼 틴 - 오페라 하우스 - 라 벨로 스파 - 카페 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롯데센터 팀호완 - 하노이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