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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ISPLAY Dec 17. 2017

<고독한 미식가> 여행기 3/5

아카바네의 우나돈과 미타카의 타이야키 세트


아카바네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우나동


온돌이 없는 일본의 주택에선 히터만이 살길이다. 추운 채로 일어나서 샤워를 끝내고 제대로 된 옷을 입어도 여전히 춥다. 그러나 햇빛은 오늘도 강하다. 군번줄 같이 생긴 열쇠로 문을 잠그고 역으로 걷는다. 30분 먼저 집을 나간 한주에게서 날씨가 좋아서 후지산이 잘 보인다고 문자까지 왔지만 반대편 도쿄타워처럼 생긴 구조물만 쳐다보다 그대로 JR 사이쿄선에 오른다. 북쪽의 사이타마 시(埼玉市)에서 서쪽의 미타카와 기치조지로 가려면 이 곳을 지나가야 한다. JR 나카우라와역과 신주쿠역, 그 중간 정도에 위치한 아카바네(赤羽). 



뜨겁기만 하고 맛없는 캔커피 서둘러 마시고 赤羽 1番街(아카바네 1번가 쇼핑 거리)로 들어간다. 어젯밤의 열기에 지쳐 쉬고 있는듯한 분위기.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드럭 스토어나 채소가게는 오늘의 영업을 분주히 준비 중이다. 고요한 황혼과 분주한 여명 사이에서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선 독특한 풍경이 있다. 이 곳은 아침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어요리 전문점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고독한 미식가> 시즌3의 1화에서 고로상이 바로 옆 가게와 고민하던 곳이며 내가 오늘 아침을 먹기로 결정한 곳이다.


まるます家(마루마스야)


오픈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마루마스야 총본점에 도착해서 나도 잠자코 그 기다림에 포함되기로 한다. 9시 정각.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가게 안으로 한 번에 들어간다. 'ㄷ'자로 길게 이어진 2개의 닷지석이 순식간에 만석이 된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준비하고 있던 이름들을 쏟아내며 주문을 내던진다. 그러면 테이블 가운데에 서있는 중년의 여직원이 노련한 솜씨로 이리저리 주문들을 받아낸다. 특별한 메뉴판이 없는 대신 자유자재로 쓴 듯한 빨간색의 한자와 숫자의 메뉴들이 매장 전체에 널려져 있다.


"우나동 토 우롱차 쿠다사이"

"우롱하이데스카?"

"이이에 우롱차데스"


烏龍茶(우롱차), お通し(오토오시)


채소를 절인 오토오시와 함께 우롱차가 나온다. 함께 들어온 그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아담한 유리병에 담긴 것도 술. 라즈베리 같은 붉은 과일이 들어있는 잔에 추하이를 페트병채 따라서 마시는 것도 분명 술. 당연히 생맥주도 술. 어째서 일본엔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까. 해가 지고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うな丼(우나동)


아침의 우나동. 평범한 메뉴지만 그 앞에 잘 안 어울리는 시간대가 붙어있어 재미있다. 밥 전체를 덮고 있는 넉넉한 장어들은 의외로 윤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숟가락이 없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지만 그런 것은 이번 마루마스야의 놀라움 중에 속하지도 못한다. 왼손으로 그릇을 들고 먹으니 젓가락만으로도 제법 해볼 만하다. 장어를 구이로 요리했는데도 이렇게 부드러운 맛을 낼 수가 있구나. 말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 간장 소스가 무리하게 짜지 않고 담백하다. 술을 부르는 부드럽고 담백한 우나동이다.


나가는 것은 내가 일등이다. 입구의 반대편에 출구가 있어 다른 손님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나갈 수 있어 좋다. 아카바네 편에서 고로상의 선택이 되었던 川栄(카와에)도 구글맵의 정보와는 다르게 벌써 영업 중이다. 아쉬운 대로 고른 100엔짜리 야끼토리는 무척 올바른 선택이다.



다시 JR 사이쿄선을 타고 신주쿠로 이동한다. 신주쿠의 복잡함을 느낄 새도 없이 JR 쇼난센으로 옮겨 미타카에 도착한다.









햇빛이 강한 미타카의 진한 타이야끼 세트


미카타가 아닌 미타카(三鷹). 세로로 길게 이어진 2차선 도로와 높진 않지만 간판의 개수는 많은 밝은 색의 건물들. 역 주변은 어딜 가나 번화가구나. 기타센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충분히 살피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간다. 햇빛이 강한 오늘 같은 날은 아무래도 사진 찍기에 손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햇빛은 거리의 모든 것들의 개성을 무력화시킨다. 



문 닫힌 상점의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엔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뒤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간다. 그리고 곧 미타카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たかね (타카네)


다이후쿠와 타이야끼 등의 디저트와 일본차를 판매하는 아마아지쇼 타카네. 포장을 해가는 손님들은 제법 있는 편이지만 매장 안에는 역시 나뿐이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유심히 살펴본다. 주문이 조금 오래 걸리는 이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 세트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아이폰에 미리 저장해둔 사진을 보여주자 그거라면 문제없어 라는 믿음직한 표정을 보인다. 기다리는 동안 보라며 코팅이 조금 벗겨진 앨범을 건네받는다. 영어와 일본어로 가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붕어빵과 역사. 생각해보지도 못한 단어의 조합이다.


タイヤキセット(타이야끼 세트)


드라마에서 본 대로 팥이 꼬리 끝까지 가득 차있다는 것 외에는 보통의 그것과 다른 점은 없다. 사실 붕어빵을 이렇게 앉아서 집중해서 먹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길거리 간식과 천천히 우려먹는 음료의 조합이 신선하다. 타이야끼가 차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녹차가 아니라 시즈오카차의 일종인 덴류차(天竜茶). 그런데 이 덴류차, 보통이 아니다. 차만 마실 땐 인상이 살짝 찌푸려질 정도의 쓴맛이 올라오지만 잔을 내려놓으면 '아까 그 맛은 도대체 뭐였지' 하며 계속 마시게 되는 중독성 있는 맛이다. 함께 나온 온수를 다기에 따라서 2번 정도 더 마신다. 햇빛 때문에 거리 풍경은 손해를 보지만 디저트와 음료는 이득을 보는 느낌. 가게 안의 모든 소품들에 눈길을 줄만큼 충분히 휴식한 후 다시 미타카를 걷는다.


"오칸조 오네가이시마스"





<고독한 미식가> 시즌2 마지막회에 타카네와 함께 등장한 이츠키 식당도 보인다. 일본 가정식 요리가 마음에 들어 처음에는 여행 일정에 포함했지만 점심시간에는 드라마에 나왔던 삼품 정식이 안된다고 해서 아쉽게 계획에서 빠진 곳이다. 날씨가 아직도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계획한 시간만큼 걸어보기로 한다.









계속 미카타가 아닌 미타카. 사이타마 현이 북쪽이라 춥다고 말했던 한주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는지 무의식적으로 남쪽을 향해 걷는다나도 모르는 새 북쪽의 무사시노 시가 아닌 남쪽의 미타카 시(三鷹)를 온전히 걷게 된다. 사무실은 물론 마트도 없는 주택가가 펼쳐진다.



철창 밖으로 나온 연분홍색 꽃을 찍고 있니까 더 안쪽의 정원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가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전에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누가 고맙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가정집들 사이에 제법 큰 공원이 하나 나온다. 이 정도에서 잠깐 쉬어가자.


上連雀児童公園(Kamirenjakujido Park)


공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쪽 끝 벤치까지 가서 널찍하게 앉는다. 풍성한 초록색의 왼쪽 나무와 오른쪽의 갈색 가시나무가 정면에 보인다. 더 왼쪽에는 책을 읽고 있는 남자가 있고 더 오른쪽의 놀이터에는 엄마와 딸이 있다. 나무와 사람들. 혹시 각각 한 가족인 걸까.

이 정도면 꽤 서쪽 끝까지 온 것 같다. 이제 기치조지 쪽으로 걷자.






인적이 드문 좁고 고운 길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위로 강한 햇빛이 내리쬔다.




선명한 색의 나뭇잎들, 검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꼬마들, 만화 원피스의 캐릭터가 그려진 칠판, 2층 높이의 열대나무 2그루, 기하학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 중인 작은 갤러리. 차츰 나무들도 그룹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미타카에서 유명한 지브리의 숲까지 갈 생각은 없지만 이 정도의 멋진 공원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다. 기치조치로 이어지는 곧은길 대신 공원 안의 구부러진 흙길을 선택. 나도 이노가시라 공원으로 들어간다.









아직 미카타가 아닌 미타카. 이미 기치조지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지만 아직 이노가시라 공원(井の頭公園)에 있다. 줄기만 이상하게 높은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과 곳곳에 세워진 자전거들. 단어만 들어도 몸이 나른해지는, 일요일 나들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누군가 큰소리를 내고 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웬 젊은 청년이 외발자전거를 탄 채로 저글링을 하고 있고, 원으로 둘러싼 사람들은 사진 같은 것을 찍지 않고 잠자코 그 청년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듣고 있다. 그들 뒤로 보이는 호수의 분수에 눈길이 간다.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작은 다리를 건너 호수 쪽으로 더 다가간다. 한없이 뒤편으로 이어지는 듯한 호수의 입체적인 풍경과 나무들이 물에 비치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다.


井の頭池 이노가시라 호수


공원이 끝나고 기치조지, 기치조지가 보인다. 

일요일 오전의 아카바네와 오후의 미타카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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