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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ISPLAY Dec 11. 2017

<고독한 미식가> 여행기 2/5

료고쿠의 당고세트와 나카메구로의 오키나와 요리


제대로 된 일본식 디저트, 료고쿠 코쿠기도우의 당고 세트


도쿄메트로 히비야선과 JR 주오소부센을 타고 료고쿠에 도착한 건 정확한 오후 4시. 정확히 1시간 뒤 다시 몬젠나카쵸로 이동할 생각이다. 역 앞 평범하게 늘어선 술집들과 익숙한 벽돌색의 빌딩들은 여기가 스모의 거리 료고쿠(両国)가 확실한 건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스미다 강 쪽의 큰 도로로 나오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아담하다 못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스모 동상이 거리 곳곳에 놓아져 있고 간판 속 한자들의 획에 힘이 더욱 들어가 있다.

'료고쿠 맞구나'


불이 켜진 가게들이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많고 아무래도 곧 어두워질 것 같다. 화과자 전문점 코쿠기도우까지의 거리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료고쿠 코쿠기도우(両国 國技堂)


"스왓테 타베라레마쓰카"


배우 정진영을 닮은 선 굵은 외모의 직원이 내가 외국인이란 걸 깨닫고 단번에 영어로 답변을 한다. 발음에도 조금 신경을 쓸걸 그랬나. 어쨌든 테이블은 기타센주의 두 곳보다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 점잖은 할아버지 두 분이 단팥죽을 각각 앞에 두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중일 뿐이다. 메뉴를 보고 있으니 당고 세트를 추천한다. 원래도 이걸 주문할 셈이지만 이렇게 나오니 더 볼 것도 없다.


"당고세토 구다사이"



마찬가지로 먼저 진한 차가 나온다. 컵에 그려진 기세노사토 유타카는 귀엽게 묘사된 것과는 달리 올해 72대 요코즈나(스모에서 최고의 직위)에 등극한 스모 선수라고 한다. 상상 속의 힘 때문인 건지 제대로 손에 쥘 수도 없을 정도로 차가 뜨겁다. 입구 쪽에서 2쌍의 젊은 커플이 연이어 들어와 크림 빙수를 주문한다. 내 것으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다가온다.


だんごセット(당고 세트)


제대로 된 일본식 디저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그중 가장 담백할 것으로 보이는 왼쪽부터 집어 든다. 살짝 구운 당고 위로 푸짐하게 김을 뿌려놓은 이소베 당고. 짭조름한 김맛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반투명한 노란색 진득한 소스가 잔뜩 묻어있는 미타라시 당고는 이번 세트의 하이라이트. 설탕과 간장으로 맛을 내어 달고 짠맛의 조화가 훌륭하다. 그런가 하면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고 팥에 대한 기대가 커진 앙코 당고는 조금 허무하다. 원래 알고 있던 팥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 양은 제법 놀랍다. 함께 내어준 수저의 용도가 이제 이해된다. 수저 아래 종이엔 귀여운 스모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당고세트인데 처음과 끝은 모두 스모가 차지하네'





점심식사보다 만족스러운 디저트 타임을 끝내고 료고쿠의 거리를 잠시 걸어보기로 한다. 수도 고속도로가 강 위로 지나가는 곳까지 왕복하면 딱 적당할 것 같다. 게이요 도로를 건너자 건물과 도로의 구분이 정직한 구역이 나온다. 



그 평범한 거리 사이에 <고독한 미식가> 시즌2 8화의 1인 창고나베 편, 창고할팽 오오우치(ちゃんこ割烹 大内)가 나온다. 시간이 애매해서 최종 후보에서 빠진 곳이지만 스모 선수들이 몸을 키우기 위해 먹는다는 창고나베는 어떤 맛일지 매우 궁금했다. 다행히 회사 근처 일본 가정식 요리 전문점에서 창고나베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같은 형식으로 끓여 먹는 스키야키보다 훨씬 내 입맛에 맞았다. 





생각만큼, 아니 생각보다 평범한 거리의 모든 것들. 자연스레 색이 밝은 것에 시선이 모인다. 구글맵으로 확인한 고가도로는 높고 불빛도 많지만 왠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계획대로 이것을 기점으로 다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더 이상 오후라고 부를 수 없는 확실한 저녁이 된다.



다시 정확히 5시. 도착했던 JR 료고쿠역이 아닌 토에이 료고쿠역에서 출발한다.









술집과 주택 그 사이, 몬젠나카초의 선술집 거리


더할 나위 없는 깜깜한 밤이다. 밥을 먹을 계획도, 디저트를 먹을 계획도, 심지어 술을 마실 계획도 없지만 료고쿠에서 고작 6분 거리인 이 곳 몬젠나카초(門前仲町)에 온 이유가 있다. 



辰巳新道(타츠미신도). 가깝게는 쇼와시대 혹은 더 멀리 에도시대까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좁은 선술집 골목. 신주쿠의 골덴가이보다 작은 규모라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보지 못한 낮보다 지금이 더 멋지게 느껴진다. 생각보다 일찍 밤이 되어버린 것이 다행일 정도다.





7시 30분에 나카메구로에서 만나기로 한주가 조금 더 일찍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아래쪽으로 조금 더 걷다가 이동하면 될 것 같다.



무려 <고독한 미식가> 시즌1의 1화.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첫 시작인 야끼도리 쇼스케(やきとり 庄助)가 나온다. 정말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번 여행의 시간과는 절대 맞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까지 발걸음을 해보지만 일본인의 시간 약속은 역시나 철저하다.



오후 기타센주의 이미지가 상점과 주택 사이였다면 이번 몬젠나카쵸는 술집과 주택 그 사이다.



지금의 피곤함.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하나면 될 것 같다. 바로 눈 앞에 자판기가 있다. 딱 좋은 타이밍. 메론소다의 맛이 좋다. 딱 좋은 선택. 한주가 나카메구로의 오키나와 요리 전문점에 더 일찍 예약을 해서 나도 조금 앞당겨 출발하기로 한다.









나카메구로의 짜지 않은 오키나와 요리


오늘의 기타센주, 료고쿠, 몬젠나카쵸와 내일과 내일모레의 아카바네, 미타카, 기치조지, 사기노미야, 쥬죠, 닌교초, 네즈는 처음 가보는 도쿄의 동네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또 다른 즐거움. 도쿄의 더 많은 곳에 발을 넓하는 것. 이번 2박 3일간의 도쿄 여행 중 유일하게 나카메구로(中目黒駅)만이 전에 한번 방문했던 곳이다. 이 곳에도 새로운 볼거리는 있다. 작년에 왔을 때 완공 직전이던 NEW 츠타야.



당연스럽게도 다이칸야마 츠타야보다 훨씬 작은 규모. 그래도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어 보인다. 어쩜 그렇게 잘 축소해서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놓았는지. 포토그래피 섹션에서 사고 싶었던 <未来ちゃん(미라이짱)> 사진집을 비교적 쉽게 찾아 셀프 계산을 끝내고 다시 도쿄메트로 나카메구로 역으로 나오니까 한주와 일본인 여자친구 유이코가 보인다.


"하지메마시떼"


아쉽지만 그 이후로 모든 대화는 영어로. 우선은 오키나와 전문 요리점 소카보카로 들어간다.


草花木果(소카보카)

어두운 실내에 오렌지색 노란 조명이 분위기를 낸다. 현악기를 기반으로 한 잔잔한 오키나와 풍 음악이 흐르고 벽에는 섬에서 입기 좋은 무늬의 시원한 반팔 셔츠가 걸려있다. 우리는 예약한 창가 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망고사와를 각자 한 손에 들고 인사를 제대로 나누기 시작한다.


"간빠이"


나는 물론이고 영어로 업무를 보는 한주보다도 월등히 영어에 익숙한 유이코는 유학을 다녀온 후 도쿄의 광고회사에서 일한다. 여전히 나는 서울에서 사진으로 꿈꾸고 사진으로 밥을 먹는다. 대충 소개는 나누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 집에서부터 가지고 온 사진앨범을 꺼낸다. 호주와 일본에서 작업한 한국인 포트레이트. 그중에는 한주의 모습도 있다. 이어서 올해 초 개인전 때 만든 엽서를 퀴즈처럼 설명하고 한주와 유이코에서 선물한다.




다시 음식 이야기. 우리가 주문한 여러 가지 메뉴 중 유이코가 주문한 2가지 샐러드가 먼저 나온다. 우선 오키나와의 대표 요리인 ゴーヤちゃんぷる(고야 챰푸루)부터. 고수를 싫어하는 내 입맛에는 잘 요리된 샴푸의 맛이 난다. 휘어진 오이처럼 생긴 고야(여주)와 함께 계란과 스팸을 볶아 만든 고야참푸루에서 유일한 빛은 스팸이다. 여기서 오키나와 음식의 특징 하나. 오키나와에서는 돼지 울음소리만 빼고 모두 먹는다고 한다.  

다음 샐러드는 海ぶどうサラダ(우미부도오사라다). 즉, 바다 포도 샐러드. 고야의 모양도 그랬지만 바다 포도라는 채소도 참 특이한 모습이다. 그래도 맛은 고야참푸루보다 견딜만하다.

다음으로 내가 주문한 3가지 메뉴가 연이어 나온다.



왼쪽부터 ソーキそば(소키소바), ステーキ(스테이크), ラフテー丼(라후테돈)


고독한 미식가라는 드라마를 모르는 한주와 유이코. 그래도 흑돼지 소금구이와 소키소바 그리고 라후테돈은 나도 그들도 마음에 들게 할 만큼 맛있는 요리들이다. 비싼 값을 제대로 해내는 흑돼지 소금구이는 육즙이 풍부하며 부드럽다. 붉은색 소금은 꽃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샐러드를 먹은 뒤라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칼국수처럼 보이는 소키소바. 역시 돼지로 맛을 낸 육수로 그 국물의 맛은 돼지국밥보다는 연한 정도. 이 중 가장 맛있는 건 라후테돈인데 간장으로 조린 큼직한 삼겹살에 훈제된 계란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밥은 또 흑미밥이다. 평범함이 없다 오키나와 요리는. 채로 썬 생강이 적절하게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나와 한주는 한잔 더 마시기로 한다. 한주는 파인 사와를, 나는 직원에게 추천받은 25도의 사케로.

술이 나오니까 이젠 안주가 바닥이다. グルクン 唐掦げ(구루쿤 가라아게)를 끝으로 소카보카의 긴 저녁식사는 끝이 난다.


그대로 헤어지긴 모두에게 아쉬운 밤. 나카메구로에서 한 정거장 앞인 에비스로 가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2016년 월요일 아침에 드립 커피를 마셨던 EBISU FOOD HALL이 보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까지 걷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샹들리에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여기까지 온 거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줄게. 어색한 표정을 최대한 빨리 풀어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영어와 일본어를 남발한다.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길. 2011년 목요일 오후에 안경을 구입했던 JOFF도 보인다. 이로써 2011년과 2016년 그리고 2017의 기억을 모두 에비스에 남긴다.





료고쿠의 오후에서 저녁부터 몬젠나카초, 나카메구로의 밤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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