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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ISPLAY Dec 08. 2017

<고독한 미식가> 여행기 1/5

기타센주의 디저트 카페와 타이 카페


도쿄 2017


작년 도쿄 여행과 같은 7C1102편이지만 1시간 더 빠르게 도쿄로 들어왔다. 미리 결제해둔 유료 좌석 덕분에 빠르게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또 그 덕분에 한 회차 빠르게 스카이라이너에 탑승했다. 닛포리역 내려 곧바로 JR 조반선을 타고 기타센주에 도착한 건 겨우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잊고 있던 파스모 카드에는 2~3번가량 전철을 탈 수 있는 잔액이 들어있다. 우선 시작이 기분 좋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일정으로 선택한 기타센주(北千住)의 첫 느낌은 일단 굉장히 넓다는 것. 서쪽 출구로 나온다. 역과 연결된 루미네 백화점과 그 옆의 마루이 백화점의 풍채가 아주 우렁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간다. 겹쳐진 간판의 숫자와 바쁜 걸음들. 지나치게 맑아서 콘트라스트가 높은 거리의 그림자까지. 내가 좋아하는 한적한 흐린 날의 부드러운 사진은 이미 물 건너갔다. 벌써 지난 5월의 교토가 그립다. 하지만 서둘러 적응해야 한다 이 분위기.


'역시 교토는 교토였고 역시 도쿄는 도쿄다'









여자 손님이 많은 디저트 카페 와카바도


곧장 타이 레스토랑으로 간다. 대여섯 명의 무리들이 문 밖으로 대기하고 있다. 나에겐 여행의 시작점이지만 그들에겐 평범한 점심시간이구나. 첫 일정이 기다림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근처라도 조금 돌아보자. 나뭇가지만 남은 키 큰 나무를 지나자 아까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좁은 길이 나온다. 하수구를 계속 쳐다보며 앉아있는 고양이는 여기보다 아래 세상이 더 흥미롭나 보다. 



모퉁이를 돌아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점심을 먹은 후 가려고 했던 카페 와카바도가 보인다. 다행히 여긴 기다리는 줄은 없다. 좋은 기운이 아직 이어진다. 그대로 문을 열었다.


cafe わかば堂 (카페 와카바도)


나름대로 한적했던 바깥의 분위기와 달리 카페 내부는 다소 소란스럽다. 대체로 그 소리는 뒤쪽 4인석 테이블에서부터 들려온다. 내가 배정받은 닷지석 왼쪽 끝에 앉은 짧은 머리의 여자 손님은 작지만 우아한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샐러드를 먹는 중이다. 아마도 파스타가 나오는 런치 세트를 주문한 모양이다. 오른쪽 2명의 여자 손님 중 내 쪽과 가까운 한 명은 먼저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최대한 접시를 몸에 가깝게 두고 치즈 케이크를 먹고 있다. 다시 한번 카페를 둘러본다. 대부분의 손님은 여자들이고 주방과 홀 직원은 모두 남자들이다. 이제 내 차례다. 침착하게 메뉴를 주문한다. 거의 곧바로 주문한 것들이 나온다.


オレンジショコラタルト(오렌지 쇼콜라 타르트), ホットコーヒー(핫 커피)


기타센주가 배경이 된 <고독한 미식가> 시즌2 11화에선 카페에서의 회상 후 태국 요리의 차례로 넘어간다. 얼떨결에 이런 순서를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나온 메뉴가 없어 비슷한 걸로 주문한 타르트부터 우선 맛본다. 메뉴 이름엔 오렌지가 먼저 나왔지만 그것보다는 뒤의 쇼콜라, 초콜릿의 맛이 전체를 감돈다. 초콜릿과 생크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쿠키는 또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이다. 확실히 보는 재미까지 있다. 왜 여자 손님들이 많은지 이해가 된다. 함께 주문한 커피도 마음에 든다. 아침 공항에서 진한 커피와 연한 커피 중 연한 것를 골랐는데 그 반대의 선택을 보답해주는 괜찮은 맛이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모두 기다려서 먹을 뻔했군. 다시 라이카노로 돌아간다.










균형이 잘 맞는 타이 레스토랑 라이카노


아직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까 내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만족한듯한 표정으로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나온다. 메뉴판을 보며 주문할 메뉴를 고르고 있으니 곧 내 차례가 된다. 긴치마의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이 안내한다.


"히토리데쓰카"

"히토리데쓰"


タイ国料理ライカノ (타이 요리 전문점 라이카노)


얇은 런치메뉴와 두꺼운 일반 메뉴를 번갈아 보고 런치 메뉴 하나와 사이드 메뉴 하나 그리고 마실 것을 큰 문제없이 주문한다. 역시 드라마처럼 5가지 메뉴를 먹는 건 무리일 것 같다. 일본인보다는 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고 카운터 바로 옆에는 아이 키 만한 전통 동상이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먼저 우롱차가 나온다.


アイス 烏龍茶 (우롱차)


아까의 커피도 그렇고 일본의 음료들은 참 아담한 사이즈다. 가끔 마시던 그것보다 조금 더 진하고 구수한 우롱차의 맛이다. 큼직한 얼음 하나. 거기에 연한 핑크색 빨대. 타이 레스토랑이지만 일본의 색이 강하다.


煮込み鶏肉とジャガイモカレー (찜닭고기와 감자 카레)


런치메뉴이자 메인 요리 격인 카레가 드디어 내 앞에 놓여 있다. 버터 치킨 카레처럼 달달하지도 않고 매운맛 몇 단계 하는 황당한 매운맛도 아닌 담백한 맛이다. 밥알은 길쭉해서 역시 카레와 잘 어울린다. 이 정도라면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저녁 타임 때보다는 분명 싼 값으로 밥과 카레를 함께 먹을 순 있지만 밥에 비해 카레의 양이 적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한입에 먹긴 조금 큼 감자는 조금 덜 익힌 듯하고, 닭고기는 질긴 편이다. 여러모로 저녁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까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 카이란 볶음은 지금 안돼서 비슷한 메뉴이면서 추천 메뉴이기도 한 이것은 어떠냐고 물어온다.


空芯菜の炒め(stir fried morning glory), おすすめ(추천)


모닝글로리 볶음. 공심채 볶음이라고도 부르는 유명한 동남아 음식이다. 언젠가 한 번은 도전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먹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특히 여기 도쿄에서는. 약간 짭짤할 것 같은 평범한 생김새처럼 첫맛부터 강한 불맛이 올라온다. 대단한 화력이다. 뒷골이 당길 정도로 진하다. 약간 모자란 카레보다 이쪽이 반찬으로 더 어울린다. 가벼운 보통의 카레와 묵직한 사이드 메뉴. 기타센주의 타이 요리는 어쨌거나 균형이 잘 맞는 배부른 식사로 끝이 난다. 오후 1시 반. 이제 사진 찍을 차례다.









상점과 주택 그 사이의 기타센주


길 양쪽으로 깃발이 많은 곳에선 좀처럼 사진 찍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더 낮고 더 조용한 곳으로. 몸이 스스로 그것을 원한다. 이곳에서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은 색 조합, 폭이 좁은 집들과 자동차, 유리창에 비친 행인의 그림자. 뭐든 관계없다. 이번 여행 사진에 서 규칙은 단 한 가지. 가능한 넓게 찍자.



정확한 장소는 모르겠지만 상점과 주택의 비율이 적당한 곳으로 발걸음이 닿는다. 낮은 높이와 연한 색들이 만드는 분위기가 첫 번째. 자세히 다가가면 보이는 히라가나의 붓터치라던가 무엇이든 귀엽게 만들 수 있다는 무언의 자신감 같은 것들이 두 번째. 이런 거리의 풍경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다. 선거 기간인지 거리 곳곳에 원색 바탕의 포스터들도 눈에 띈다. 구름이 더 끼었는지 더 큰 건물에 가려졌는지 그늘이 넓어졌다.



가로로 계속 걷다가 방향을 꺾어 세로로 길게 이어진 상점가로 들어온다. 그중 보란 듯이 원두가 담긴 자루들을 매장 한가운데 펼쳐 놓고 있는 커피 체인점이 있다. 야나카. 저곳에선 맛 좋은 커피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메뉴판에 있는 가격들이 놀랄 만큼 저렴하다. 작은 종이컵에 오늘의 추천 커피를 시음용으로 우선 건네받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픈 키친의 신뢰감처럼 그 맛이 믿음직스럽다. 





걷는다. 길이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고 시장과 가정집들의 경계가 더 모호해진다. 문 닫힌 상점에는 일본풍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여기는 일본이란 것을 계속 상기시켜 준다. 갑자기 나와버린 사거리에서 위쪽으로 더 올라간다. 이번에는 야끼도리를 파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이자카야에서 안주로 파는 꼬치구이보다는 어릴 적 국민학교 앞에서 먹었던 추억에 가까운 맛이다.



계속 걷는다. 담 위에서 꽤 의기양양하게 앉아있는 검정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네니까 아기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온다.



더 걷는다. 일본의 대중목욕탕, 센토(銭湯) 중 가장 유명한 다이코큐유(大黒湯)가 나온다. 3시가 넘은 완전한 오후지만 일요일 오전의 나른함이 코끝을 스친다. 이곳은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드라마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 무슨 팔자 좋은 드라마인가 했더니 이것 또한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작품이다.  고독한 미식가. 낮의 목욕탕과 술. 한 없이 허기지고 또 나른해진다. 두 번째 장소로 발을 옮긴다.


토요일 오전과 오후의 기타센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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