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거울 대신 창문을 여는 사람

운세보다 더 정확한 예언에 대하여

by Ondo fiftytwo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점집으로, 타로 가게로,

혹은 스마트폰의 운세 앱으로 몰려간다.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가 거울 앞에 서듯,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올해 나의 운세는 어떠니?"

"내가 올해 승진은 할 수 있을까?

돈은 좀 벌까? 사고는 없을까?"


우리는 왜 그토록 남의 입을 통해

내 미래를 듣고 싶어 할까.

아마도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내비게이션 없이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것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인생을

내가 직접 운전해 나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누군가 "올해는 동쪽으로 가라"고 정해주면,

책임의 무게가 좀 가벼워질 것 같아서.


재미있는 건, 왕비가 거울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안

그녀의 인생은 거울 속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오직 거울의 답변에 매달려 일희일비했다.

타인이 말해주는 미래에 의존하는 순간,

우리는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겨주는 꼴이 된다.


나는 작년 한 해를 보내며 깨달았다.

가장 용한 점쟁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지난 1년, 내가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던 날들,

추위를 뚫고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졌던 각오들,

두렵지만 과감하게 서브를 넣었던 순간들.

(두려움에 안전한 서브를 넣었던 후회의 순간 조차)


그 데이터들이 모여 나의 미래를 만든다.


운세는 "올해 물을 조심하라"고 말해주지만,

나의 성실함은

"올해 너는 어떤 파도도 넘을 수 있다"

고 말해준다.

사주는 "올해 이동수가 있다"고 말해주지만,

나의 실행력은

"어디로 가든 너는 뿌리를 내릴 것이다"

라고 확신을 준다.


그러니 올해는 거울을 보며 묻지 않기로 한다.

대신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보겠다.

남이 점쳐주는 미래(Mirror)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어갈 풍경(Window)을 바라보겠다.


불안한 마음에 운세를 클릭하는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를 더 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예언은,

오늘 흘린 나의 땀방울 속에 이미 적혀 있으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


I don’t need a prediction.

I need a dir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