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2026년 1월 1일.
새로운 해의 호각 소리가 울렸다.
달력이 넘어가고,
우리는 다시 인생이라는
코트의 서비스 라인(Service Line) 위에 섰다.
손에 쥔 공의 무게가 묵직하다.
새해라는 시작점은 언제나 설레지만, 동시에 두렵다.
올해는 또 어떤 공격이 넘어올지,
내 서브가 네트에 걸리지는 않을지,
라인 밖으로 벗어나지는 않을지.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하이큐>의 장면이 떠오른다.
시합의 결정적인 순간,
서브를 넣어야 하는 선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실수하면 점수를 뺏긴다는 공포,
팀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그는
결국 '안전한 서브'를 선택한다.
네트에 걸리지 않게,
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게,
그저 상대 코트로 조심스럽게 공을 넘기는 것.
"일단 넘기기만 하자."
결과는 어땠을까?
그 어정쩡하고 착한 공은
상대 팀에게 가장 치기 좋은 '찬스 볼'이 되었다.
상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스파이크를 내리꽂았고,
점수는 허무하게 넘어갔다.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지난날의 내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워 안전한 길을 택하고,
튀지 않는 목표를 세우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주었던 날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실책'은
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찬스 볼'로 넘겨주었던가.
하지만 항상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안전한 서브를 넣는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운명을
상대방의 손에 쥐어주는 꼴이 된다.
주도권 없이 끌려다니다가
결국엔 패배하는 게임.
그것은 과감하게 도전하다가 당하는 패배보다
훨씬 더 뼈아프고, 무엇보다 '후회'가 남는다.
"공격적이든 아니든, 열심히 하든 아니든,
도전하든 안 하든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짐 캐리(Jim Carrey)는 말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는 쪽을 택하는 게 낫지 않은가?"
어차피 인생에
‘100% 안전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도 불행은 찾아오고,
몸을 사리며 안전하게만 살아도 후회는 남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네트에 걸릴지언정
팔이 빠져라 휘둘러보는 게 낫지 않을까?
도전하다가 겪는 실패는 쓰라리지만,
적어도 '감각'은 남는다.
내 손끝에 닿았던 공의 무게,
전력으로 뛰어오를 때의 심장 박동,
한계를 넘어보려 했던 뜨거운 의지.
그 감각들은 내 몸에 근육처럼 남아,
다음번에는 더 강한 서브를 넣을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도망쳐서 얻은 안전함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저 "그때 한번 질러볼걸" 하는
눅눅한 미련만 곰팡이처럼 피어오를 뿐.
그래서 나는 2026년의 첫 다짐을 이렇게 적는다.
"올해는 안전한 서브를 넣지 않겠다."
내 인생의 코트 위에서,
다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을 넘기지 않겠다.
아웃이 되더라도, 네트에 처박히더라도,
나는 나의 풀 스윙으로 서브를 넣겠다.
실패는 언제나 두렵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기를 바란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이 아니라,
내가 부딪혀서 깨진 그 자리가,
차라리 나의 낙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