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메뉴를 향한 암투
점심 메뉴 고르는 게 뭐가 이렇게 피곤할까
직장에서 제일 힘든 게 뭘까.
나는 이제 확신한다.
점심 메뉴 고르기다.
사람이 세 명만 모이면 점심은 갑자기 정치가 되고,
그 정치 속에서 인간의 성격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직장에는 점심 메뉴만 고르면
딱 두 부류의 빌런이 등장한다.
1) 상사 유형: “이 집은 이 메뉴랑 이 메뉴 조합이 제일 맛있어~”
우리 상사는 음식 조합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이 집은 이 메뉴랑 이 메뉴 조합이 좋아~”
“여기 오면 이걸 먹어야 돼.”
문제는… 그 확신이 때때로 타인의 위장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매운 거 못 먹는 사람이 있어도
매운 메뉴를 시킨다.
다른 메뉴로 바꾸자고 하면 표정이 굳는다.
그러다 갑자기 말한다.
“그럼 하나씩 먹고 싶은 거 고르자.”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하나’에 꼭 매운 메뉴가 포함된다.
누군가 맵지 않은 비슷한 메뉴를 고르면?
“그건 균형이 안 맞잖아~”
결국 상사가 처음 정한 대로 먹게 되고,
그제서야 상사는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리셋 버튼을 누른 느낌이다.)
2) 동료 유형: “메뉴는 싫은 게 많은데, 결정은 못함”
동료는 또 다른 의미로 힘들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에
안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다.
고기는 꼭 비계를 다 떼고 먹고,
본인은 국물을 싫어한다면서
같이먹는 국물 메뉴를 시켜놓고 젓가락으로 휘저어
건더기만 건져 먹는다.
동료와 나 둘이 메뉴를 정할 때면
보통 내가 권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건 안 땡겨요.”
“그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그럼 네가 골라봐” 하면?
“모르겠어요…”
의견은 있는데 선택은 없다.
3) 오늘의 에피소드: 칼국수로 시작된 전쟁
오늘은 상사가 오기 전에
동료와 먼저 점심 메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말했다.
“나 칼국수 먹고 싶어.”
동료는 말했다.
“저는 쌀국수나 한식이요.”
그래서 나는 또 맞춰줬다.
“그럼 쌀국수 먹자~”
조금 있다가 상사가 왔다.
“점심 뭐 먹을까?”
그 순간 동료는 늘 그렇듯…
쏙 빠진다.
“뭐 먹을까요?” 한마디만 하고
갑자기 존재감이 사라진다.
나는 가끔 그게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것도 재능이다.
그러다 상사가 말했다.
“오늘은 내가 땡기는 게 없어. 너네가 골라봐.”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진짜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자.
“저 칼국수요.”
동료는 갑자기 어버버하더니
“네? 뭐요? 뭐 먹어요?”
상사가 한마디 한다.
“칼국수 먹자.”
그 순간 동료는 말한다.
“아~ 칼국수 좋죠!”
…아까는 쌀국수 먹고 싶다며.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사가 자리를 뜬 한참 후
동료가 갑자기 말한다.
“근데 저… 오늘 면이 땡기지 않아요…”
아니…
그러면 아까는 왜 칼국수 좋다고 했을까.
그리고 갑자기 나에게 메뉴 결정을 토스한다.
“하나는 칼국수 시키고, 다른 건 (나한테)골라요.”
만둣국도 있고 전골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길래
나는 말했다.
“난 하얀 칼국수만 먹으면 돼. 너 알아서 골라~”
그런데 또 못 고른다.
못 고르다가 결국 하는 말이
“그럼 저 햄버거 먹고 잘래요…”
(나는 점심 메뉴를 고르다 갑자기 현실을 잃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스타일의 사람을 엄마처럼 챙겨줘야 하는 걸까.
나는 출근했지… 양육하러 온 게 아닌데.
결론: 나도 이제 쏙 빠져야겠다
초반에는
자기 의견을 말하지도 않는 동료가 원하는 메뉴를
내가 대신 말해준 적도 있고,
상사와 메뉴를 조율하려다가
괜히 나만 미움 산 적도 있다.
근데 이제 결론은 하나다.
이런 부류의 빌런들과는
내가 먹고 싶은 메뉴 말하고, 안 맞으면 따로 먹는 게 낫다.
나는 가리는 것도 없고
맞춰주는 편이긴 한데,
이런 식이면
괜한 고집이 생겨 오히려 맞춰주기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