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권 Jun 10. 2020

실험 연구실 대학원 진학에 적합한 인재상은 뭘까요?

연구 머신?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는 실험 연구실에서 곧 졸업을 할 예정으로 졸업 논문 심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졸업 기간 압박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관계로... 

오늘 글은 '아 이 사람 지금 졸업을 앞두고 아무 말이나 쓰고 있구나' 하시면서 그저 가볍게 재미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질문:

'실험 연구자의 자질이란 뭘까?'

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실험 연구자는 1인 기업과 비슷합니다.

저의 얕은 관찰에 따르면, 이 '1인 기업'으로서 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봤을 때, 1인 기업의 사업가가 '연구'라는 돈이 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매력적인 연구 아이템을 마케팅해서 돈을 따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큰 줄기를 해내야 합니다.

- 그랜트/돈 딸 수 있는 연구 계획서 작성

- 이 연구 계획 발표해서 그랜트 따기

- 연구 실행/연구 실적 쌓기: 논문 출판(publish), 연구 발표(presentation)


이렇게 실적이 쌓이면 다음 연구 계획도 나오고 다시 그랜트 따기 좋은 명성도 생기고 선순환!

참 쉽죠?



자 이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 연구 주제 설정: 중요하면서도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혹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펀딩을 주는 사람들이 믿어주는) 연구 문제 설정

- 연구 운행: 내가 계획서에 작성한 예상 연구 결과가 내가 제시한 시간 내에, 혹은 더 빠르게 나오게 하기

- 그림 그리기: 결과를 예쁜 figure로 만들기(Python, Matlab, Illustrator, Photoshop, ProCreate든 한땀한땀 대학원의 피땀 장인 정신이든 뭐든!)

- 포스터 만들기: 깔끔함, 가독성, 중요한 건 잘 보이게,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질문 나올 필수 요소는 존재하게

- 발표 자료 만들기: 전문적이지만 너무 지루하지 않게, 흐름 강조해서

- 발표 잘하기: '아 이 사람은 연구를 제대로 하는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흡입력

- 사회 활동: 학계에서 공동 연구자, 협력 기업 등 collaborator 만들고 유지하기

- 글쓰기 : 논문 잘 읽히는 논리로 쓰기

- 리뷰 대응: 나의 완벽한 논리와 여린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논문 리뷰에 대해서 적절히 대응하기

쳐낼 것 쳐내고 따를 것 따르고.

등등...


여기에 만약 이 연구자가 '대학 교수'가 된다면 학교의 행정일, 강의 준비, 학생지도(주로 내가 그린 큰 그림이 현실이 되게 학생들의 생산성을 매니징 하는 것) 등의 업무들이 추가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보직 등의 추가 업무나 방송, 대중서적 집필, 교과서 번역 등은 개개인의 의사에 따라, 혹은 상황에 의한 압박에 의해 얹어질 수 있네요.



그럼 이런 실험 연구자에
가장 적합한 사람의 자질이란 건
 뭘까요?

가상의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모든 이상적인, 최적화된(optimal) 속성을 나열해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 수와 논리에 꼼꼼하고,

- 감정적인 사고 보다도 논리적인 사고를 편안해하고,

- 일을 미리미리 하고,

- 일의 중요도 분배/시간 분배를 잘하고,

- 감정 기복이 적게 멘탈이 단단하며,

- 한번 본 논리는 구체적인 부분(저자, 숫자, main figures)까지 잘 기억하며,

- 발표와 토론을 잘하고,

- 논리적인 글을 잘 쓰고,

- 연구를 접하면 그것의 근본적인 질문과 핵심/한계가 무엇인지 날카롭게 잡아낼 수 있으며,

- 궁금한 기반 지식이 있으면 영어논문이든, 처음보는 수학이론이든, 무슨 타 필드의 전공지식이든 파고들고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능력,

- '잘 아프지 않는' 신체를 가진다면 좋을 것...


그리고 실험 연구는 했던 모든 것을 싹 다 다시 하는 경우가 많으니, 

지치지 않는 집요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일 이상적인 건

그냥 자나 깨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연구인 사람.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지치지 않는 집요함의 원천은 조금 더 빨리 고갈될 위험이 큽니다.


딱히 쇼핑도, 돈도, 큰 명예나 여행, 파티, 워라밸도 관심 없고,

원래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 방식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측정하고, 기록하고, 실험하고 정리하는 것'인 사람들...인데... 


사실 '누가 이렇게 살아' 싶기도 합니다. 주변에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랩 걸'과 파인만의 책들을 읽어보면, 미드 빅뱅이론의 쉘든이 어릴 때 치던 장난들과 그들이 평소에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하는 행동들 같은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꽤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짜 실제로 존재하고, 웃음의 공감을 살 만큼 있습니다. 학부 때는 잘 안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대학원생 이상만 모아둔 학회라면 몇 개만 가도 많이 보입니다. 사실 이런 천성 연구자인 사람들이 교수라는 소수의 한정된 자리의 숫자보다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




물론, '이런 사람들이어야 성공한다'라는
요지의 글이 전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생활해보니, 이런 사람들이 '아 내 인생을 학계에 들인 건 아주 아주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아...'라고 후회할 확률이 낮을 것 같다는 느낌인 거죠.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연구실 선택, 교수님과의 케미스트리 오류, 아무리 해도 결과가 안 나오는 실험... 등 충분히 후회할 수도 있는 지뢰가 많은 것이 과학이라는 분야이니... 다시 한번 부탁드리지만, 오늘 글은 '아 이 사람 지금 졸업을 앞두고 아무 말이나 쓰고 있구나' 하시면서 부디 가볍게 재미로 읽어주세요!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images.app.goo.gl/oimZSnPuz8Ywr2Wr8

작가의 이전글 대학원 인턴/입학을 안 하고 학자의 삶을 알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