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2 시작

할 수 있을 때 잘하기

by 한권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봄이 여기도 결국 찾아왔구나. 겨울이 아무리 혹독하고 끝이 없어 보여도 무조건 봄이 오듯, 너 또한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하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그때는 봄이 오듯 네가 와도 우리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날 수 있음을 몰랐었다. 덕분에 이제는 알지만. 봄학기를 맞아 처음으로 듣게 된 기초 신경 생물학 수업은 아는 것이 없어서 오히려 재밌었다. '오- 그래- 어디까지 모르나 보자.' 어렴풋이, 고등학교 때 가장 싫어하던 과학 과목이 생물임을 떠올렸다. 과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물화생지 중 늘 물리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건 상대적으로 거의 외우지 않아도 되고 뭐가 어떻게 되는지, 왜 그런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좋았다. 자연이 숨겨둔 본질을 좀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을 줬거든. 생물은 '그래서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죠? 이 부분에서 이 부분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는 알려져 있나요?'하고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여쭤보면, 꽤나 특이했던 한복으로 인기가 많았던 생물 선생님께서는 초롱초롱하고 뿌듯한 눈빛으로 '그걸 알고 싶으면 대학원에 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걸 알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에 와있군. curiosity killed the cat. 아마 고양이가 궁금증으로 인해 죽었듯 나 또한 죽일 것이다. 햇볕이 따뜻해서인가, 생각보다 말도 안 되는 정보량을 던지는 수업에 대해 마음속으로(/채팅으로) 경악(심한말)하던 친구들의 표정도 햇볕을 쬐는 고양이의 그것과 한결 닮아있었다. 이 좋은 날씨를 활용하지 않고 죽일 수 없어서 친구가 이사 갈 집 후보 보러 간다길래 따라갔는데, 어느새 눈도, 학교에서 설치한 겨울 시설도, 트리도, 다 사라져 있었다. 친구는 자가 격리하는 기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고, 우리는 그것을 놓쳤다고 했다. 나는 새삼, 갑자기 변한 캠퍼스의 모습에, 학부생들이 다시 들어찬 모습에 한국의 새내기 시절 설렘, 그 향이 코끝을 스친다고 생각했다. 시나브로가 아닌, 갑자기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시작/햇볕/고양이/1인분/시간/마음

할 수 있을 때 잘하기.


한문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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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듯 브런치에 전체공개로 매일 써보려고 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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