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삶과 타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삶
'We are all equal'이라고 하잖아. 'But that's obviously not true.' 그래서 다문화와, 인종차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친구는 이야기했다. 대놓고 무시하는 백인들. 미묘하게 선을 확실히 하는 행정체계. 그리고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미국은 가장 힘들고 나약할 때 서로의 곁에 확실하게 있어줄 관계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같다고. 그런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고. 나는 영화 조커와 기생충을 이야기했다. 고독사와 참견사.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채로 죽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 끊임없이 타인의 삶에 깊숙이 참여하고, 개입당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체면을 지키고, 비교하고, 무시하고,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서 얽히고설키며 발버둥 치는 삶에 대한 고발.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삶과 타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삶. 그러나 결국 두 문화에서 모두 영향을 받은 우리는 이 문화도, 저 문화도 아닌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becoming yourself, myself. 그러면 좀 뭐 어때.'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말풍선을 던지고선 산책을 마쳤다. 도망친 곳에 구원은 없다. 그렇다면 구원과 안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걸까. 요즘 드는 생각은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부터 극단적 외향적인 사람까지 모두에게, 심지어 많은 동물에게까지도 사회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가장 작고 필수적인 단위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개인주의든 가족주의든, 사회주의든. 가장 추하고 나약한 모습까지 사랑하고, 가장 예쁘고 좋은 기억만 주고 싶은 나의 소중한 존재. 그들이 조금 덜 울고, 조금 더 웃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쳐서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하나도 아깝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박수홍은 다홍이와 삶을 함께하면서 구원받았다고 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한, 한결같은 내편. 그곳이 어디든, 이런 존재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곳이 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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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불안/개인주의/오지랖/구원
손톱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