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묻어있는 그들의 조각
'너 참 설명서 잘 따른다. 나는 절대 안 읽어!' 꼼꼼하게 시리로 타이머 20초를 맞춰가며 버블티를 만드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전연인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어.' 라면까지도 봉지에 적힌 분과 초를 지키던, 내 삶의 일부이던 사람. 그때는 라면회사에서 연구원들이 10초 혹은 더 작은 단위로 쭉 라면을 늘어놓고 실험을 한 뒤 차트에 꼼꼼히 평가한 후 가장 이상적인 라면을 위한 분과 초를 봉지에 적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설명을 따르던 너의 모습에 웃었었는데, 이제는 내게서 그런 너의 조각이 보였다. 나와 삶을 섞었던 그들의 조각들. 나의 전연인들은 모두 성격이 정말 꽤나 많이 다른 사람들이었고, 나는 알게 모르게 그들을 나의 삶에 섞어서 나의 빛과 나의 색에 영향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전연인의 언급이 많다면 아마 루틴이 없는 것이 루틴이던 나에게 가장 루틴을 심어준 사람이고, 나와 가장 오래 삶을 섞었던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누군가가 내게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의 우주가 오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우주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을 어쩌면 연애 그 자체보다도 사랑했다. 그 우주만의 빛을 보아주고, 남들이 보지 못한 원석의 빛나는 면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았다. 어떠한 성격의 사람이든,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무장 해제된 모습으로, 그만의 빛으로 더 빛나길 바랐다. 설령 그만의 빛이 나에게 편안한 빛이 아닐지더라도. 하나의 우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라는 우주로 인해 서로의 우주가 더 깊고 커지고 풍요로워지는 것. 그것이 연애라 생각하기에. 따라서 연애라는 관계를 마칠 때에도, 나는 이미 나의 최선을 다하여 한 우주를 들여다보았고, 나의 삶과 섞는다는 것, 그 우주가 내 삶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 그 이상으로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기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 빨리 나의 삶에서 덜어내지 않은 것에, 그리고 내 삶에 섞지 않았어야 하는 우주를 섞은 것에 후회가 있었을 뿐. 예전에는 설령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이라면 삶을 섞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관계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연애를 쉬다 보니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하고 싶어졌다. 하나의 우주를 받아들이고, 나의 삶에 섞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지만, 섞였던 삶을 다시 떼어내고, 분리하고, 빈 곳을 수리하는 과정이 버거울 것 같아서. 잠시 지친 것인지 이제는 소위 '나이가 들었다'는 상태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사람이 아니면, 내가 이렇게까지 내 영혼의 나신을 드러내지 못할 것 같아'라고 가슴 깊이 느끼던 시기들이 있었었는데. 이제는 무한히 강렬했던 감정과 믿음마저 사실은 신기루 혹은 호르몬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걸까. 전생처럼 한때의 꿈으로 남은 마법 같던 시간들. 그런 확신을 갖고 시작해도 헤어지는 것이 연애인데. 감정의 확신조차 없이 시작하면 어떻게 해피엔딩이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