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퇴근 후에 시간이 꽤 있다. 예전에는 없었단 얘기다. 야근이 많던 전 직장과 대조했을 때 지금의 내가 있는 당근(마켓)은 야근이 없다. 퇴근 후, 넉넉한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그리고 자기계발이라고 퉁치며 이것저것 경험을 했다.
1년 4개월 정도 당근에 있으면서 업무 외 시간에 자기계발로 무엇을 했는지 간략하게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난 책 욕심이 참 많다. 그에 비해 읽는 속도는 현저히 느리다. 집에도 읽지 않은 책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책을 찾아다닌다. 쌓아놓은 것에 비해 읽는 양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책을 읽기 위해 스스로 장치를 만들었다. 책을 매일 들고 다닌다든지, 목차를 잘게 쪼개서 일별로 무조건 읽도록 한다든지.. 물론 잘 안 된다. 역시 나에겐 책임감을 간접적으로 끌고 와야 한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분께서 만드신 트레바리를 이길 '나와바리' 독서모임. 설명을 듣고 매료되어 덜컥하겠다고 했다. 나는 비문학 쪽을 자주 읽는데 이곳은 소설을 자주 읽는 듯하다(비문학을 자주 어필해야겠다). 어쨌든 나와바리는 한 달에 책 1권을 선정하고 읽은 후에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 모인다. 필수적으로 모이는 것은 아니고 선택적이며 굉장히 후리(?)한 느낌이다. 모이게 되면 사전에 발제된 내용을 토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책 선정은 매월 읽고 싶은 책 후보를 받고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책이 선정된다. 내가 미는(?) 책이 선정되지 않으면 슬프긴 하지만(ㅠㅠ).. 이런 식으로 활자와 익숙해진다면 개인적인 시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게으른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올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엄청 많이 한 것 같다(여기서는 두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만큼 게으름을 타파하는 처방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암묵적인 책임감이 생겨버린다.
첫 번째는 뽀시래기의 지식 한 장 이라는 프로젝트이다.
실무에 쓰이는 용어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용어들을 한 장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구독 형태의 뉴스레터이다. 쿠키, DAU, MAU, A/B 테스트 등 신입사원에게는 낯설을 수 있는 용어를 매주 2개씩 소개한다.
두 번째는 이말삼초 라는 프로젝트이다.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90년대 생들이 모여서 진행했다.
요즘에 만연한 위로를 던지는 책들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어쩌면 그 위로들이 무책임한 건 아닐까? 불특정 다수에게 "다 괜찮을 거고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오히려 현실을 방관시키는 폭력적인 말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위로의 말은 없다. 그냥 우리 90년대 생들이 현재 겪고,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을 짧게 담았다.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은 아닐지라도 '이십 대 말 - 삼십 대 초'의 눈에 비친 삶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솔직 담백한 책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게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실패를 겪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목적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내가 관심 있는 어떤 것을 100일 동안 꾸준히 진행하면 그것뿐만 아니라 습관이 몸에 체득되어 다른 일들을 함에 있어서도 좋은 습관이 길러지지 않을까 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하루에 1개씩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이 그림을 100일 동안 그리는 1일 1그림 프로젝트를 8월에 마무리했다. 많은 터치가 가는 것이 아닌데도 오늘 하루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펜으로 어디에 그릴지 고민하는 시간이 상당히 고됐다.
그리고 지금은 모션그래픽에 꽂혀서 100일 모션그래픽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틀에 1개씩 만들고 있는데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다. 이게 진짜 힘들다. 하루에도 어떤 작업물을 만들지.. 어떤 튜토리얼을 보고 따라 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꾸역꾸역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틀에 1개씩 못 채우는 날이 빈번한데..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에 만족하며..(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지?)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책 욕심은 많지만 실상 많이 읽지 못하는 것처럼 글 쓰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꾸준히 쓰는 게 쉽지가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당군신화 이후로 엄청 오랜만이다. 당군신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위에 독서모임과 마찬가지로 글 쓰는 것이 힘들지만 간접적인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글쓰기를 하고 싶은 걸>이라는 글쓰기 프로젝트로 약 20명의 사람이 모여 각자의 일에 대해 글을 썼고, 이것을 2권의 책으로 만들어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으로 텀블벅을 진행해보았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었다. (두 번째 때는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느낌.. 아니 근데 또 하려고..?)
책은 <잡스 JOBS>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했다. (이것 역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을 쓰는 것은 스스로 정리가 되며 과거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를 끝으로 글 쓰는 일과 조금 멀어졌지만(ㅠㅠ)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뽜이팅..!)
내년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성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 물론 일을 많이 벌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올해는 이것저것 많이 해봤으니까(?) 내년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해보고 수지타산(?)에 맞는 것을 하려 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