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 타임>을 읽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일을 열-심히 해도 나중에 뭘 했는지 돌이켜보면 생각이 안 난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제발 나만 그렇지 않기를..)
우리(직장인)는 일을 한다. 일이 주어지면 하고, 때가 되면 하고, 갑자기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에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오늘 뭐했는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저 열심히 불태웠다는 감정 하나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만끽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생각 한번 해보자. 그래서 당신은 뭘 했나? 당신이 회사에 기여한 게 무엇인가? 말할 수 있나? 여전히 '그냥 이것저것 다 해요. 야근도 하고..'라고 얼버무릴 텐가. 그러면 너무 슬프잖아. 그걸로는 내 이력서 한 줄도 못 채운다. 아니 그냥 빼는 게 낫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회사가 흘러가는 대로 내 몸을 그냥 맡기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했는지 객관화하고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나도 그러지 못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변화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느껴지는 게 재밌다.
<메이크 타임>은 전 구글 디자이너 2인이 쓴 책으로 저자들은 이미 <스프린트>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4단계 시간관리 방법을 요 며칠간 내 업무(또는 삶)에 적용해 보았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아주 쉬운 방법이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아주 요긴하게 썼던 것들 위주로 설명을 해보려 한다(책에는 4단계 프로세스 안에 총 87가지의 세부 방법이 있다).
가장 먼저 이 4단계 프로세스를 기억해야 한다. 오늘 내 삶에 있어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하이라이트', 하이라이트에 온전히 힘을 쏟을 수 있는 '초집중', 지치지 않기 위한 '에너지 충전' 그리고 '돌아보기'.
사실 이 4단계의 키워드를 보고 의미만 대충 알아도 어떤 걸 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제부터 단계별로 하나하나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겠다. 여러분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무엇이 가장 빛나기를 바라는가?
<메이크 타임>, p.56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오늘 하루의 하이라이트를 정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그것, 하이라이트 말이다. 당장 생각이 안 날 수도 있겠다. 그럴 줄 알고 책에는 세 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긴급성
만족
즐거움
긴급성
오늘 해야 하는 가장 긴급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이라이트로 정하면 된다.
만족
하루가 끝날 무렵 가장 큰 만족을 안겨줄 하이라이트는 무엇인가? 나에게 큰 성취감(만족감)을 주는 일을 하이라이트로 정하면 된다.
즐거움
오늘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즐거움을 느낄 일은 무엇인가? 완벽한 하루란 불가능하다. 그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이라이트로 정할 수도 있다.
책에는 이 세 가지 전략 중에 스스로의 직감을 믿고 오늘은 어떤 하이라이트가 가장 적합할지 판단하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전략을 가지고, 이제 하이라이트의 세부 방법 몇 가지를 활용해보자.
할 수도 있는 일 목록은 말 그대로 내가 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쭉 나열한 목록이다. 이렇게 쭉 써보고, 거기서 (긴급성, 만족, 즐거움에 의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이라이트로 정한 다음 일정표에 해당 하이라이트를 특정 시간에 넣는 방식이다.
버너 리스트란 위의 이미지와 같이 가장 최우선인 일을 왼쪽에 두고(앞쪽 버너),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을 오른쪽에 둔다(뒤쪽 버너). 그리고 나머지 잡무는 오른쪽 아래에 두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카운터 공간은 가장 최우선의 일을 확장하기 위해 비워둔 공간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저자 JZ, 제이크가 각각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해서 나만의 방식대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버너 리스트가 나와 가장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버너 리스트를 메인으로 가되 할 수도 있는 목록은 내가 언젠가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일들을 나열했다. 원래 카운터 공간은 비워두는 공간인데 나는 '까먹노트'라고 해서 하나의 영역을 만들었다. 이것은 조금 이따 '초집중' 파트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를 정했으면 실행을 해야 한다. 실행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언제 실행할 것인지 정하며 그 시간은 비워두어야 한다.
하나. 하이라이트에 얼마의 시간을 할당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둘. 언제 하이라이트를 실행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셋. 일정표에 하이라이트를 기록한다.
<메이크 타임>, p.80
하이라이트가 채워진 시간에는 어떠한 다른 것들이 끼어 들어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그 시간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더 중요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게 뻔하다. 그럴 때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위로 다시 올라가서 껴들어온 일이 내 하이라이트와 비교 대조하여 '긴급성, 만족, 즐거움' 면에서 큰 것이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라. 그렇지 않다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이것 또한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말이 쉽지.. 거절을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하시라.. 그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 없다. 미안)
하이라이트도 정해졌고, 얼추 하루의 그림이 그려졌다면 구체적으로 시간별로 하나씩 업무를 넣어 보는 것이다. 계획대로 일이 안된다고? 나도 안다. 나도 예전에 시간별로 넣고 이상적인 계획을 세웠지만 끝끝내 하지 못했다. '역시 세상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라 생각하고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내가 설계한 계획과 실제 진행된 일을 서로 놓고 바라보면 내 하루를 객관화하여 볼 수 있고 다음 스텝(내일, 모레, 미래..)에는 어떻게 하루를 설계할지 대충 그려진다. 그래서 하루를 설계할 때는 [(내가 설계한) 계획 / 실제 / 수정]을 한 캔버스(화면, 종이 등)에 놓고 하루를 바라보면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초집중은 말 그대로 '몰입'하는 시간이다. 즉 하이라이트를 실행하기 위해 몰입하는 시간을 말한다. 사람은 집중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자신을 방해하는 잡음 때문에 상승곡선을 이어가던 집중력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 그런 잡음들을 차단하고 초집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한 연구에서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의 글로리아 마크Gloria Mark는 사람들이 주의를 전환했다가 본래 하던 일로 되돌아오는 데 23분 15초가 걸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메이크 타임>, p.149
우리는 하루의 해야 할 일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 수많은 잡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카톡의 울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기사글,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꼭 눌러서 1을 없애고 싶은 이메일 목록, 그저께 시킨 택배가 어디쯤 왔을까 하고 떠오른 생각 등.. 이런 것들을 살펴보다가 다시 하이라이트를 위해 돌아와서 집중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미 답은 위에 써져있고, 이런 잡음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그 시간은 배가 될 것이다.
하루의 업무 중에 하이라이트도 있고 루틴화 된 업무, 매일 하는 업무, 간단하게 처리하는 업무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쉬운 걸 좋아한다. 그래서 쉬운 거부터 하고 (매일 하고 있는) 반복적인 업무를 먼저 끝내려 하는 습성이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업무를 끝내면 이런 생각이 들 게다. '좋았어! 오늘은 벌써 3가지 업무나 처리했군!'.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를 실행하는 것이 진짜 승리라고.
하이라이트에서 잠깐 소개한 '까먹노트'가 바로 이 부분이다. 까먹노트는 하루에도 수십 번 떠오르는 시간 구멍들을 모아두는 창고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이름이 뭐더라', '쿠팡에서 의자를 구매해야지', '관리실에 전화해야지' 같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적어 놓고 나중에 일괄 처리하거나 퇴근 후에 처리하는 식이다. (까먹노트라는 이름은 까먹을까 봐 적어놓는 노트의 줄임말로 그냥 내 입에 착-착- 감겨서 정했다)
3단계, 에너지 충전은 초집중을 진행하는 도중에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운동하기, 진짜 음식 먹기, 산책하기, 명상하기, 낮잠 자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바로 카페인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커피(카페인)와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커피를 섭취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책에서는 의도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라고 조언한다.
카페인 없이 잠에서 깬다(침대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지 않은 채 아침을 먹은 뒤 하루를 시작한다)
첫 번째 커피를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마신다.
두 번째 커피를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30분 사이에 마신다.
<메이크 타임>, p.235
나는 오전(10시~11시 사이)에 출근하고 바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2시 30분이 지나면 되도록이면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2시 30분이 지나고 카페인을 섭취하면 그날 잠을 망칠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다고 하니 자기에 맞는 시간대를 찾으면서 활용해보면 좋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초집중, 에너지 충전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내가 설계한 하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고 어떤 부분을 채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가 공개한 메이크 타임 데일리 노트(손그림 버전 / 심플 버전)를 통해 오늘 하이라이트, 집중도, 에너지 수준 등을 적을 수 있다.
또한 아래의 저자의 블로그를 통해 책에 소개된 다양한 툴을 만나볼 수 있다.
나도 여전히 실행 중이고,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최근에는 <메이크 타임>에 소개한 아주 일부의 내용을 내 식대로 변형하여 우리 집 청소에 적용해보았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내 삶의 큰 부분(청소를 한다는 것 자체)이 바뀐 거 같아 아주 흡족했다.
(아주 심플하고 명확해서) 어쩌면 이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안 되거나 너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미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자신의 업무를 실행하는 직장인도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더 많은 방법과 사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나는 지극히 일부의 방법만 소개했다. (하지만 4단계의 뼈대는 동일하다)
혹시라도 시간관리를 잘하고 싶었던 직장인들에게 이 글이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