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브랜드와 헤어졌다

그 제품은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했다

by 한원아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품, 즉 브랜드로부터 제가 받았던 배반의 감정을 풀어쓴 글입니다. 그전에 저는 이 제품의 원가, 임금, 부재료 상승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손익 강화 및 조치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해줄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랑했던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그 사람이 왜 이별을 고했는지에 대한 속사정을 낱낱이 알 수는 없겠지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들 제가 모르면 그만입니다. 그냥 이별을 고한 당신이 미울 뿐. 헤어지고 나면 그 뒤는 냉정한 법. 남은 건 그저 저의 슬픔뿐이겠지요.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밑밥을 어느 정도 뿌린 후에 시작하려는 것은 혹여나 그래도 지금 말하고자 하는 브랜드(아 이제는 그냥 '제품'이라 부르겠습니다)의 관계자분께서 우연히 이 글을 보시고 노여워하시지는 않으실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부디 그러시지는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속사정도 모르는 게 까불어!라고 말할 거 다 압니다)


것은 단지 당신을 멀리서 몰래 지켜보며 짝사랑했던 한낱 볼품없는 소비자가 꽤나 큰 충격을 받아 기록한 일기일 뿐입니다.


스무디킹의 어여쁜 컵

먼저 사랑한.. 아니, 사랑했던 당신의 모습을 보시죠.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하얀색 무광의 피부에 속내를 숨긴 채 보랏빛, 빨간빛, 노란빛의 옷만을 고집했습니다. 특히 저는 당신이 베리베리나 골드키위 선샤인을 품었을 때를 가장 선호했습니다. 당신이 친환경을 생각하지 않들 상관없습니다. (아, 변한 당신의 지금 모습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군요)


그리고 전 어느 날 다시 당신과 마주했을 때 깜짝 놀라고야 말았습니다.


ㅇ...ㅇ..으..으아닛!?


세상에. 자 제가 놀란 부분. 작년에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때 처음 마주하게 되었거든요. 놀랄 것 없죠? 하지만 전 놀랐습니다. 무려 컵이 바뀌다니!!!!!


예민보쓰..

아 제가 너무 예민한가 봅니다.


컵 하나로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컵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스무디킹은 한순간 그 흔한 음료 매장 중에 하나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아 진정할 수 없는 이 마음은 단지 겉모습이 바뀐 것 때문일까요. 이렇게 끝내버리면 전 그냥 예민하고 쓸 데 없는 것에 크게 신경 쓰는 프로불편러로 남고 말 것입니다. 다시 곰곰이 왜 제 뇌의 회로에 미움과 슬픔의 감정이 뒤범벅되어 안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성적 고찰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3단계의 상실로 나누었습니다. 살펴보시죠. 렛츠게릿.


1. 친근의 상실

친근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가장 생각해보기 쉬운 친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에 친구가 되기 전에, 그러니까 남남일 때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친구의 겉모습(생김새)과 행동(이것 또한 겉모습이겠죠)에 따라 '난 쟤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거기에 더하여 호감으로 또는 불호감으로 다가오겠지요. ("난 아닌데!"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럼 제가 할 말이 없어집니다) 물론 그런 과정 없이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겠죠.


아무튼 나에게 꽤나 친하게 다가왔던, 초중생 때는 그래도 함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인 친구라면 왠지 어제 본 것처럼 뒤통수라도 한 번 쳐주고 싶을 정도로 반가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스케치되어 있던 그 모습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아, 제 경우엔 그 상황이 어색하고 하루 빨리라도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싶을 겁니다.


일차적으로 스무디킹의 변한 지금 모습은 기존에 저에게 인식되어 있던 친근감을 상실시켜주었습니다.


2. 습관의 상실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스승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제자 윌 헌팅(맷 데이먼)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위 이미지처럼요) 아내가 하는 작은 습관들. 아내가 나와 있을 때만 보여주는 작은 습관들. 숀은 아내가 죽고서 그런 사소하지만 나에게만 보여주었던, 나와 아내만이 비밀 리에 간직하고 있는 이런 습관들만 선명하게 생각나고 그립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내 아내니까,라고 하면서 말이죠.


저도 사실 스무디킹과 함께한, 스무디킹과 나만이 비밀 리에(?) 간직한 습관들이 선명하게 생각이 나고 그립습니다. 그 습관들이 사라진 마당에 화풀이할 데도 없고..하.. 그냥 여기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 컵일 때 자주 하던 저의 일련의 행동이 있습니다. 그 감정의 서사를 떠나보낸 사랑한 연인이라 생각하며 시의 어조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 그립습니다.
빨대를 문 상태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
났었던 그 영롱한 끼-긱 소리가 그립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컵.
먹어도 먹어도 악착같이 남아 있는 당신의 존재.
그곳에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과학적 원리가
들어간 것은 아닌지 감탄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당신과 만난 시절 속에
그 습관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지금.
나는 너무나도 그대가 그립습니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가졌던 나만의 경험은 곧 제품과 내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흔히 브랜딩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경험하면서 당신의 이름이 각인되는 것이죠) 나와 제품이 동일시되고, 나는 그 제품을 치장함으로써 존재를 느끼는 것이죠.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하루아침에 단절되어버린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어우. 상상도 하기 싫으시겠지만 전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3. 교감의 상실

결국 모든 것은 친근함을 통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습관을 부르면 교감까지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과 나만의 습관이 곧 교감이 되면 이 교감은 다른 교감으로 퍼지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나와 당신만이 알던 습관을 은밀하게 알린다던가(입소문), 당신과 교감했던 경험을 공유한다거나.. 말이죠. 교감의 단계까지 온다면 이것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퍼지기도 아주 쉬워집니다.


제가 스무디킹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과정은 이러합니다.

친근 - 겉모습이 다른 음료와는 달랐던 그 녀석에 호감을 느끼게 되고 친해졌다.
습관 - 제품 자체도 아주 만족스러웠고, 어느새 자주 경험하다 보니 재밌는 습관들이 생겼다.
교감 - 그 습관이 어느새 그 제품과 나만의 연결고리(교감)가 되고, 제품 자체의 만족도와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또 다른 교감)하고 싶어졌다.




어쨌든 전 쩨쩨하게도(?) 그 사건(?)이 발생한 후로부터 정말 무섭게도 스무디킹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커밍아웃) 사실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항상 고속버스터미널을 가면 들르는 방앗간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서점, 하나는 스무디킹이었는데 말이죠. 이젠 서점만 갑니다..


브랜드는 참 고민해야 되는 게 많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원가 절감, 임금, 부재료 등의 고민, 외부적으로는 저같이 까다로운 소비자를 위한 디자인, 포장, 가격 등의 고민. 내부, 외부 모두-모두 중요합니다.


제품은 파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사고 싶게(경험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죠. 파는 것과 사고 싶게 만드는 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은 행동을 유발합니다. 사고 싶게 만들어야죠. 경험하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부나 외부 둘 다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무너지거나 결여된다면 제품은 그저 제품인 상태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상 스무디킹을 너무 사랑했던 한 소비자의 땡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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