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아저씨는 허세남.
블러핑(bluffing)이란 포커 용어가 있다.
낮은 카드를 가지고 큰 돈을 걸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수일 수록 잘 쓰는 기술이다.
허세를 잘 부리는 것이 고수다. 하지만 남자는 나이가 들 수록 허세가 심해진다.
고수라서가 아니라 약한 하수라서 발버둥치게 되는 것, 약해지는 남자는 허세가 늘게 된다.
내가 클래식을 듣기로 맘 먹은 것은 정확히 '허세'의 심리로 출발 한 것이다.
어느 작품에서 내가 썼던 대사 -돈 좀 벌면 집에 정원도 있고, 정원이 있으면 정원사도 있고, 정원사도 있으면 정원사 정부 정도는 있어야-처럼 말이다.
"40대 중후한 남자가 되려면 클래식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
이것이 클래식 듣기에 도전하기 시작한 내 마음의 대사다.
허나, 난관은, 듣는 척 하기도 좀 버거운 음악이 클래식이라는 것이다.
‘나 클래식 들어’라며 '척'하며 듣기에도 버거운 음악, 거꾸로 그렇게 듣는 '척'하며 들어도 만만치 않고 어려운 음악이 이 '클래식'이라는 동네다.
왜지?
왜 그럴까?
노래는 별로 없고 기악 중심이라 그럴까? 기악이 아니라 성악이라도 가사를 알아 들을 수 없는 - 왜 성악은 다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걸까- 이유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페라, 그렇다, 멋지게 노래하는 오페라! 근데 가사는 왜 한국말로 안 하는 거야!)
한국어로 된 가곡(한국어로 된 성악은 가곡이라는 정의는 맞나, 아, 이 클래식에 무지한 나) 보다는 클래식이라면 한국 가곡 보다는 모차르트, 베토벤 정도는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
그렇다! 허세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영 깔깔하고 뻑뻑한 현미 밥 맛이라 목 넘김이 쉽지가 않았다.
몇 번이고 시작된 클래식 도전은 번번히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하고 클래식은 안 맞나? 자책이 밀려온다.
잔소리가 무서운 나이. 행동 하나에도 자꾸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쳐다본다.
뭐 잘못 한 거 없나 싶어 눈치를 본다.
한때 세상 모든 불의와 싸울 것 같은 용기와 신념 따위는 죽 쒀서 개 주듯, 남 준지 오래다.
클래식을 듣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지만 눈치를 본다.
이럴 때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라도 듣고 싶지만 아빠도 아니고.
뭐 이미 사는 게 온통 실패의 덩어리인데, 이것 더 하나 실패한다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지, 하는 쓸쓸한 스스로의 위안이 더욱 눈물짓게 한다.
이럴 때는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까?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축복송을 흥얼거린다만, 더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위로는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