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al의 클래식 정복기

피아노 시절

by Oneal Song

6. 핑거링 지옥

새로 진도를 나간다.

레슨은 새로운 페이지, 변주곡 2번, 전반부다.

새로운 10마디, 오른손 왼손 따로 진도가 나간다.

레슨 시간 대부분이 손가락 번호를 붙이는 데 소비됐다.

지금 쓰는 악보는 부조니 편집본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말했다.

“바흐 악보는 부조니 편이 제일 정리가 잘 되어 있고요."

유추하면 바흐의 악보는 정리자가 여러 명인 데 그중에 1등이 부조니 씨 거라는 말.

1등이라면 군말 없이 따라가는 것이 배우는 자의 예.

그러나 손가락 번호가 거의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배신자여, 부조니.”

좀 친절하면 안 되나 서운하다.

레슨용 악보가 아니라 공연용 악보라는 뜻.

아마추어에게는 출입 금지 벽을 쳐 놓은 듯 악보가 만만치 않고 어렵다.

심지어 변주곡 2번 전반부 10마디까지 악보에 손가락 표시가 전혀 없다.

9번째 마디와 10번째 마디는 붙임줄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왼손과 오른손이 높은음에서 만난다.

“4, 5번. 어떤 게 편해요?”

피아노 선생님이 내 의향을 묻는다.

나는 놀랐다!

“내가 선택하는 건가요? 피아노 손가락 번호는 원래 정해진 게 아닌 가요?“

손가락 천부지정설을 주장해 본다.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음표 위에 손가락 번호를 붙이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나는 성인 되어 피아노를 배웠다.

유년기에 배운 피아노를 성인이 되어서 “다시”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나의 라이벌은 언제나 피아노 의자에 앉아도 발이 닿지 않는 초등학생들이었다.

성인반만 있는 피아노 학원은 없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 성인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에는 번호가 붙는다

손가락 번호부터 외워야 한다!

엄지는 1로 시작해서 약지는 5다.

오른손의 기준이 되는 가운데 도는 오른손 1번.

왼손에 기준이 되는 아래 도는 왼손 5번.

나는 한참이나 헷갈려서 고생했다.

“이것도 설명해 드려야 하는구나!”

연신내 집 앞 골목 미용실 옆 피아노 원장님이 말했었다.

‘원래 이런 거 설명 안 해주는 건가요? 그럼 저절로 아는 건가요?’

말 못 하고 속으로 의심했다.

‘내가 성인이라고 대충 가르치는 거 아닌가?’

늘 의심했다.

대표적인 게 손가락 번호 매기기다.

애들한테는 선생님이 마디마디 손가락 번호를 써준다. 하지만 내 악보에는 알아서 쓰라는 듯 모른척했다.

“저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어요. 성인이 되어 처음 시작합니다”

내가 알 것이라고 예단하지 않기를 바랐다.

원장님들은 놀란다.

“그래요?”

‘굳이 배우려고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되묻는 거 같았다.

하지만 친절한 이번 피아노 선생님은 꼼꼼히도 손가락 번호를 잡아준다.

”레슨은 안 하고 손가락 번호 매기는 거로 하루 때우는 건가? "

내 맘속에 악마가 속삭인다.

‘안 해줄 때는 안 해준다고 지랄이더니, 이제는 해준다고 지랄이다.’

나는 맘을 고쳐먹어야 한다. 이번 주는 꼭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해야 하겠다.

"피아노 선생님의 손가락 번호 매기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이래서 자꾸 많은 피아노 원장님들이 성인 레슨을 거부하는 것이다.

핑거링 대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연습한다.

인삼밭에 일도 너무 힘들다. 힘든 몸으로 치는 피아노. 그러나 힘든 일이 피아노에도 생겼다.

“손가락 번호가 틀렸다.”

나는 홀로 속삭인다.

피아노 선생님이 써준 손가락 번호가 분명 틀렸다.

나는 확신한다!

변주곡 2번. 전반부. 9번째와 10번째 마디. 핑거링이 가장 복잡하다. 오른손 높이인 가운데 도를 지나 높은 도까지 왼손이 올라온다.

오른손은 높은 미가 낮은음이다.

9번째 마디와 10번째 마디는 붙임줄로 연결되어 있다.

피아노 선생님은 왼손 1이라고 써줬다.

그러나 왼손 1로 치면 악보에 그려진 붙임줄을 표현할 수 없다.

붙임줄은 손을 떼지 않고 다음 음표까지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왼손 1로 치면 손가락을 들어서 공백이 생긴다. 붙임줄로 연결 불가.

왼손 1이 아니라. 오른손 1로 쳐야 한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 번호 매기기를 의심하지 않기로 다짐하지 않았는가?’

“오, 주여.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한주 내내 의문을 품고 보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