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흉내내기

PART_재즈

by Oneal Song

*표지 사진은 앨범 재킷이다. 우표를 이미지화했다. 이 우표를 불법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후에 실제로 셀로니어스 뭉크의 우표가 발행되었다. 뭉크는 특별하다.

5. The Unique Thelonious Monk

피아노에 대해서 쓰려니 설렌다고 하면 과장이다. 조금 신이 난다. 뭔가 다른 느낌이다.

매일 5분 피아노 치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지는 연말부터인가인데 오늘로 8일 차로 기록되었다. 자꾸 피아노 치기 루틴을 빼먹는다. 긴장감이 안 생기나? 피아노 치는 재미를 못 잡는다. 재미가 없진 않다. 꾸준하게 하는 일상을 구축하기 위해 매일 애쓴다. 그중에는 벌써 30일 동안 지속하는 루틴도 있다. 매일매일 한다는 게 중요하다.

피아노도 그렇다. 피아노도 매일 하다 보니 변화가 있다. 큰 변화는 똑같은 마디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연습이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제대로 칠 때까지 백 번만 치자’, 이렇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서 반복 연습이 싫었다. 대충 후루룩 지나가면서 쳐댔다. 이제는 루틴의 세계를 이해하고는 매일 같은 마디만 쳐도 맘이 편하다. 지치지 않는다.

'피아노 5분 치기'. 매일 하는 피아노 루틴의 이름이다. 딱 5분만 치자. 이렇게 해야 마음도 편하고 몸도 욕심이 없고 뇌의 거부감도 적다. 5분이니까 몇 마디 몇 번 치면 지난다. 그러니 어디를 치든 딱히 기운 쓰지 않는다. 그러니 한 마디를 열 번 치나 열 마디를 한 번 치나 5분은 훅 지난다. 편하다. 바쁜 날은 정말 5분도 치고 쉬는 날엔 네 마디 네 줄 한 페이지를 치기도 한다.

재미는 좀 덜하다. 피아노가 아니라 싼 디지털 건반이라 그럴 것이다. 25만 원 주고 산 건데 초반에 이걸로 꽤나 연습했는데 이제 건반은 좀 시큰둥하다. 진짜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다.

반투명 LP다. 나도 첨 구경했다.

도서관에 재즈 들으러 갔다. 영하 6도. 어제는 달리기를 했는데 오늘은 달리기 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추운 시간대였다. 집에 가서 드라마도 봐야 하지만 주 1회 브런치 올리기 루틴을 위해 재즈를 들으러 간다. LP를 듣는다. 무릎 꿇고 쭈그리면 힘들다. 재즈 앨범을 찾다가 셀로니어스 뭉크를 골랐다. 오랜만에 피아노에 흠뻑 시간을 담그기로 한다.

이 음반은 커버 앨범이다. 제작사가 너무나 앞서가는 뭉크가 대중에게 외면받는 게 걱정되었는지 유명한 곡을 커버하는 음반으로 만들었다. 전위적인 예술이 대중에게 흡수되는 과정. 연주가 들린다. 피아노를 여러 악기로 변화시키는 듯하다. 비브라폰 연주처럼 들리기도 한다. 재즈는 단 한 번뿐이다. 똑같은 것도 다음은 달라진다. 라이브를 듣고 싶은데. 못 간다.

클럽 에반스 매일 라이브 재즈가 있는 곳. 빌 에반스의 이름으로부터

파행과 유니크. 뭉크는 자신이 미래라는 것을 알았을까? 미래의 투자. 재즈란 본래 어수선하다. 정리되고 온전한 규칙 하에 있는 안정을 원한다면 클래식을 들어라. 그것도 고전주의적인 클래식. 불규칙의 삐걱거림과 삐죽 솟아나서 찌르는 것이 이 음악이 얼마나 현대적인지 알게 해 준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엔트로피적이고 일방향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누구도 흐르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재즈는 이 시간 개념의 핵심이다. 동일한 재즈는 절대 없다. 두 번은 없다. 저장은 이것을 거스른다. 동일한 것을 무한히 반복하고 시간의 흐름을 잡아놓는다. 억지로 우리를 녹음 시점으로 고정시킨다. 우리는 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여행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피아노는 거대한 전함의 조종기다. 마치 하록 선장이 이끄는 우주 전함 아르카디아호를 이끄는 조종실에 놓인 조타기와 같다고 상상해 본다. G-C-G 이렇게 코드를 치면 거대한 아르카디아호는 스르륵 좌현으로 방향을 바꾼다. G를 누르고 오른손 멜로디로 솔-시-레 이분음표를 길게 누르면 전함은 가속도를 억제하기 위해 역방향으로 빛을 발사한다. 그리고 천천히 재 가속한다. Em로 방향을 잡고 D로 좌현으로 돌아서 직선으로 전함을 고정시킨다. 직진이다. 왼손 C코드와 오른손 솔-미를 길게 늘이면서 감속 재출발을 준비한다.

피아노는 거대한 신호기일 수도 있다. 피라미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라미드를 깨어나게 할 회로도 악보가 피아노 악보대 위에 놓여 있다. 파피루스가 아닌 지구상에는 없는 특수한 탄소체로 만들어진 물체에 특수한 액체로 쓰여 있다. 피아니스트는 아틀라스처럼 사이보그다. 그의 얼굴이 곧 눈이고 렌즈다. 그의 눈에서 특수한 광선이 악보를 투시한다. 피아노가 울리자 피라미드의 거대한 바위들이 진동한다. 거대하고 네모난 바윗돌들 한 개 한 개가 반도체로 깨어난다. 하나하나가 현재 엔비디아에서 만드는 GPU의 병렬연산 능력과는 비교가 안 될 수치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변환된다. 피라미드는 우주선이다. 피라미드에는 인류를 구원할 항성 간 이동이 가능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이렇게 상상해야만 피아노라는 기계가 가진 무한한 능력에 공감할 수 있다. 그 무한한 기능을 깨어나게 하는 것은 사람, 피아니스트다. 피아니스트는 단순히 건반을 누르는 사람이 아니다. 건반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는 위대한 수학자다. 그리고 우주의 법칙을 구현하는 위대한 수리물리학자이다. 그들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고 구성하는 근원적 원리를 탐구하는 자들이다.

그중에 가장 유니크한 연주자는 뭉크다. 그는 유니크하고 이 음반의 이름이 ‘유니크’다.

앨범 뒷면 원곡이 있는 노래들

두 개의 노래를 비교하면서 듣는다. 뭉크 시대에 유명했다던 오리지널,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1929년 뮤지컬 <Show Girl> 수록곡 ‘Liza’와 뭉크의 연주를 비교해 보자. 지금 듣기에는 뭉크의 연주가 훨씬 보편적이다. 파행이 아니라 현대적 스타일이 가득하다. 조지 거슈윈은 따뜻하고 편안하지만 오래된 느낌이다. 지금 음악은 뭉크다. 뭉크는 그 당시가 아니라 지금의 음악이다. 전위적인 것이 보편적이다. 뭉크의 음악은 예술사를 증언한다. 뭉크의 음악이 삐딱하고 파행적이며 절음발이 걸음 같다고 하지만, 그게 요즘 음악이다. 수도사(The Monk)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말한 예언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