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달리기
5. 사는 것은 이어달리기
사는 것은 이어달리기
달리기 책을 많이 읽으면 달리기를 잘하게 된다.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정의한 문과 남자의 전형적인 세계관이다. 책으로 모든 것을 배운다. 오리엔탈리즘 분야 학자의 오류이고, 황금가지의 저자가 가진 책상 연구의 특이성이다. 물리적이지 않고 사유적이다. 읽은 책만큼 달릴 수 있다면 이봉주는 걸어 다니는 한글 도서관이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살아있는 전설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된다.
‘캐셔로’라는 히어로가 능력을 발휘하면 몸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것처럼, 마라토너가 달리면 몸에서 글자가 막 떨어질지도 모른다. 만 미터 경주를 하면 트랙에 수많은 알파벳과 다양한 글자들이 가득 흘러넘치고 쌓일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진행요원들이 바닥에 쌓인 문자들을 치우는 장면이 생중계 화면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저 수많은 글자들 사이에 한글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쉽군요.”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의 한탄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아쉽게도 달리기는 달려서 해결해야 한다.
하루키의 달리기 책에서 '50대 후반에 다시 달린다'는 문장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50대 후반 하와이에서 다시 달리는 남자를 상상해 본다. 이국적인 곳에서 달려보고 싶다. 하루키를 제대로 흉내 내려면 달리기도 재즈도 하와이도 아니다. 진정한 따라 하기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주변을 떠돌고 있는 알고리즘의 대세는 ‘50대 중년을 위한 재테크’다. 그중에서 인생 2막을 위한 자격증 따기가 가장 많다. 전기 기사 자격증, 소방 관리자 자격증, AI 활용을 위한 자격 취득. 새 인생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 자격증이 새로운 일자리와 새로운 수입을 보장해 줄 것처럼 인스타, 유튜브, 메타 곳곳에서 알고리즘을 올려준다.
“실패가 가득 찬 고물상에 살고 있다.”
현재 상황을 규정하는 문장이다. '실패의 다반사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남들은 인생을 다듬고 다지고 마무리 국면으로 가는데, 온통 다시 시작해야 할 것들만 가득하다. 달리기, 블로그 올리기, 일 7시간 주 5일 동안의 시간제 노동.
모든 새로운 시작은 실패 위에서 출발한다.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은 그동안 해오던 것이 다 실패했다는 뜻이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하던 것들을 계속하고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라톤 풀코스 달리기를 10회 연속 실패하고 중도 포기한 러너가 된 기분이다. 그 지랄을 해놓고서도 다시 달려보겠다고 사부작대고 있는 것이다. 실패를 되돌아보는 것은 바보 같지만, 실패해도 다시 해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하루키 흉내 내기를 써가는 사람으로서 내 흉내의 최고봉을 향해 간다. 늦었지만 가보기로 한다. 50대 중년을 위한 자격증, 선택은 '소설가'라는 자격증을 따기로 한다. 실패를 그렇게 해놓고도 또 같은 선택을 한다. 돈 되는 자격증 놔두고 돈 안 되는 자격을 딴다고 나서는 것 말이다. 실패로 얻은 교훈은 없는 것인가?
일상을 단순화한다. 수입에 맞춰서 지출을 한다. 불필요한 것들은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돈이 드는 것은 최소화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사는 것이다.
새벽일을 나가는 부류의 특성이다. 5시 기상, 5시 30분 집을 나선다. 2시 퇴근, 집에 오면 3시 30분. 이때부터 여유 시간이다. 5시에 일어나려면 늦어도 9시에는 누워야 한다. 다른 것을 끼워 넣을 틈이 없다.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단순화가 최고의 수단이다. 다른 변화가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이 일상의 무한 반복과 변하지 않음, 고정된 루틴이 편하다.
“반복되는 일상을 권태로워하지 않는다.”
실패로 얻은 교훈이다. 단순한 일상에 끼어드는 유일한 자극은 달리기다. 달리기의 중독성이 일상성을 흔든다. 달리기가 만든 통증들이 생활을 위협한다. 달리기로 지친 몸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게 한다. 달리기는 계획되지 않은 소비를 일으킨다. 수입에 맞춘 소비, 최소한의 소비만 한다는 미니멀한 패턴을 위협한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중독이다.
일루지오(illusio)는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과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명찰을 붙이듯 의미를 넣는다. 내 생활에 부착한 명찰은 다음과 같다.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
의미 부여가 아니라 달리기가 의미 자체 같기도 하다.
소설가 자격증 따는 법은 AI에게 묻기로 한다.
“자격증은 따로 없습니다. 끝까지 쓰는 힘, 자신만의 문장만이 있을 뿐입니다.”
문장은 그럴싸한데 이 태도가 불만이다. 끝까지, 자신만의 문장. 실패한 이유는 이런 게 안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일단 소설을 써야 한다. 하루키를 흉내 내서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좋은 소설이 막 써졌으면 좋겠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1km 마일리지당 한 문장씩 좋은 문장이 생기면 좋겠다. 10km 마일리지당 좋은 서사가 한 편씩 생기면 좋겠다. 하프를 달리면 중편이 하나, 풀코스를 뛰면 장편이 하나, 하루키 아저씨 급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달리기 때문에 카톡방이 두 개 더 추가되었다. 달리기 훈련을 같이 하는 카톡방이 먼저 생겼다. 99명 풀로 찼다. 카톡방은 '10km 60분 내 완주 도전 방'이다. 매일 달리기를 인증하고 달리기를 상담한다. 달리기가 일상을 치고 들어온다. 달리기는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맘으로 카톡방을 바라본다. 누군가 갑자기 올렸다.
“이어달리기 마라톤 대회 같이 나가실 분 있어요”
“그게 뭔가요”
“7명이 한 팀으로 풀코스를 완주하는 겁니다.”
“하실 분 손.”
손을 올렸다. 여자 6명. 남자는 안 된다. 아쉬움 한 스푼.
“입상이랑 상관없으면 남자가 끼어도 된대요.”
이렇게 마라톤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첫 마라톤 대회가 어울렁더울렁 정해진 것이다. 한 사람당 달려야 하는 거리는 6km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다. 신발도 새로 사야 하고, 러닝 고글도 사야 하고, 그물형 언더웨어도 사야 하고, 러닝용 허리 색도 사야 하고, 예쁜 반바지도 예쁜 티도 사야 하고. 예쁘게 하고 대회에 나가고 싶다. 돈이 들 것이다. 대회를 결정하자마자 참가비 4만 원이 지출되었다.
마라톤을 나가면 달릴 때마다 몸에서 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돈이 쏟아진다. 연비 나쁜 자동차처럼 돈을 넣어야 달린다. 그래도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동생처럼 아끼는 후배의 형이 죽었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다. 내가 죽은 것 같은 느낌이다. 3일간 같이 상을 치렀다. 상을 마치고 난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같다. 그가 갖지 못한 새 삶의 기회가 생긴 것 같다. 허투루 살지 않겠다. 뭘 하겠다는 게 아니다. 하루라도 안 행복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일 억지로라도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 목표를 지켜주고 지지해 줄 것은 달리기뿐이다.
이제 달리기가 아니라 훈련이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했기에. 역전 마라톤 대회 같은 형식이다. 7명이 42.195km를 나눠서 뛴다. 6km를 뛰어야 한다. 인생 첫 대회가 이어달리기라 더 만족이다. 대회까지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 그냥 러너가 아니다. 마라톤 대회 출전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