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구의 기억을 읽는 사람들

사라지는 기록 앞에서

by 지온

2008년, 우리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목조 건축물의 소실이 아니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기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광경이었고, 우리는 그 상실 앞에서 함께 아파했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도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온도의 상승으로 천천히 녹아내리며 사라지는 기억, 그것이 바로 ‘빙하’다.


우리에게 빙하는 낯선 풍경이다. 교과서 속 사진이거나, 영화 <겨울왕국>의 배경이거나, 펭귄과 북극곰이 사는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스위스 주민들이 사라지는 피츠올 빙하를 위해 장례를 치를 때 느낀 상실감은, 우리가 숭례문을 잃던 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그 낯선 존재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책은 지루한 과학 보고서가 아니다. <겨울왕국 2>의 엘사가 찾아 헤매던 ‘기억의 강’ 아토할란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드라마 <시그널>의 낡은 무전기처럼 과거의 공기를 들려주는 얼음 속 기포의 목소리는 어떤지, 그리고 지구의 얼음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지키려던 ‘혼문’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무너질 때 지구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준다.


무엇보다 이 탐험의 중심에는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이 있다. 우리는 남극 스틱스(Styx) 빙하에서 2천 년 전 미생물을 깨우고, 80만 년 전의 얼음 속 먼지를 분석해 고대의 바람을 복원하며, 지난 세기 인류의 활동이 남극에 새긴 흔적을 밝혀낸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집요한 추적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제, 기후 위기라는 현실 속에서 지구의 오래된 일기장이 페이지가 아니라 책 자체가 사라지듯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빙하는 남극의 이야기지만, 그 기록은 결국 한반도의 바다와 기후로 이어진다. 극지의 얼음이 녹을 때 바다의 높이와 파도도 변하고, 대기의 흐름도 달라진다. 극지의 빙하 변화는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영향은 이미 우리의 시절 속에 스며들고 있다.


이 책은 그 마지막 기억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사라지기 전에 그 기록을 함께 읽고자 하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