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빨간 사람들

by 가을나무



그날은 형의 시험 전 날이었다.

형은 그날따라 말이 없었고 앞에 놓인 불판 때문인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 손으로 고기 뒤집기에 바쁘면서도 다른 한 손으론 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버지는 형에게 공무원이 되면 좋은 점 20가지를 또 한 번 읊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4번, 퇴근시간이 일정하다를 말하자마자 형은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난 깻잎 하나를 손에 얹고 형의 그릇에 담긴 고기를 옮기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내 이마를 향해 옆에 있던 야구공을 있는 힘껏 던졌다. 머리를 싸매는 나를 보고 기겁한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을 때리며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저녁 식사는 끝이 났다. 다음날 아버지는 목을 긁으며 나에게 모자를 쓰고 나가는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의 하품엔 술 냄새가 났다.

형은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새 스케치북을 양손 가득 들고 내 방에 들어왔다. 난 형을 따라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형의 서랍 안엔 굳어져버린 붓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하루 동안 물에 불려진 붓들은 가지런히 내 책상 위로 옮겨졌다. 형은 방벽 가득 붙여 있던 그림들을 떼서 상자에 넣어 내다 버렸다. 아깝지 않냐는 내 물음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형은 쓰레기차가 집 앞 골목으로 들어오는 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청소부들이 차에서 내리고 상자가 쓰레기 차 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나서야 형은 발걸음을 뗐다. 쓰레기차의 뒷모습을 우린 자꾸만 뒤돌아봤다. 산책을 좀 하자며 공원을 간 형은 공중 화장실에서 삼십 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화장실 앞의 꽃이 꽃마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땐 꽃을 내려다보면서도 꽃이 보이지 않았다. 형은 빨간 토끼 눈이 되어 나와 이제 집에 가자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이 바빠지고 나서 할머니의 관심은 나에게로 점점 집중되었다. 파란 그림 바탕에 포인트로 그려 넣을 만한 빨간 물건을 찾는 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길 건너 수족관에서 금붕어를 훔쳐왔다. 수족관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아버지는 할머니를 말없이 바라봤다. 아버지 뒤에서 난 어쩔 줄 몰라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비닐봉투를 쥐어주며 빙긋이 웃어줬다. 봉투 속 빨간 금붕어들은 날 올려다보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수족관 아줌마가 창문 안에서 우리를 노려보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봉지를 돌려드리라 말하고 할머니를 집 안으로 모셨다. 수족관으로 가는 중에 검은 비닐봉지는 요동쳤다. 금붕어들은 아무래도 할머니가 더 좋았나 보다. 흘리지 않으려고 비닐봉지를 묶으려던 와중에 손이 미끄러져 봉지를 놓쳐버렸다. 봉지가 퍽 하고 터지며 내 주변으로 숨을 가쁘게 쉬는 금붕어들이 퍼덕거렸다. 아줌마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날 이후 아버지는 길 건너 수족관에서 커다란 어항 하나에 금붕어 열 마리를 사 왔다. 할머니가 우기는 바람에 어항을 할머니 방에 두긴 했지만, 가족들 모두가 수시로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할머니는 내가 금붕어를 그릴 때마다 바닥에 드러누워 구경하길 좋아했다. 금붕어가 꼭 해 같이 빨갛고 작고 예쁘다고 말했다. 거의 하루 종일을 어항 앞에서 지내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영정사진마저 어항 옆에 두고 봤다. 마지막 날도 그랬다. 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 방을 열었을 때 역시나 할머니는 어항 앞 이였다. 창문으로 내려온 노을이 할머니를 비췄다. 할머니는 금붕어같이 빨갛고 작고 예뻤다. 그렇게 할머니는 8월의 영원한 잠을 잤다. 어항 옆 할아버지 영정사진과 함께 할머니 사진이 놓였다. 발인까지 울지 않았던 아버지는 모든 장례가 끝난 후 밤에 홀로 일어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고는 했다. 아버지가 방으로 도로 들어가고 나서 난 계단에서 내려와 아버지가 먹었던 잔을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