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의 바다
창밖으로 푸른빛이 보이는 새벽, 엄마는 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잠을 깼다.
칭얼대며 몸부림치는 나를 달래며 엄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가 온전히 나오지 않아 밖은 어두웠지만 엄마는 코트를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엄마를 찾는 곳은 이른 아침부터 많았다. 꽤 불룩한 배를 부여잡고 학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엄마를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안쓰러워했다. 등 뒤로는 허리를 붙잡으면서도 엄마의 얼굴은 언제나 밝았다.
책상 앞에 앉아 웅크린 채 두 시간 동안 중학생 아이를 가르치는 시간이 오면 난 갑갑해서 발차기를 해댔다.
옆에 앉은 여학생은 신기해하며 엄마의 배를 만져보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옷으로 날 감싸며 앞에 놓인 영어 책을 가리켰다. 엄마는 아빠와 할머니를 제외하고 누군가가 당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을 싫어했다. 몇몇 사람들은 엄마의 단호한 행동에 서운해하기도 했지만 난 그런 엄마가 좋았다.
모든 일을 마치고 늦은 밤, 엄마는 집 뒤의 뒷동산을 느릿느릿 올랐다. 마침내 꼭대기에 오르자 어제와는 또 다른 파도소리 가득한 바다가 나타났다. 어두운 바다는 수평선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엄마는 먼저 나에게 사과를 했다.
“ 미안해. 많이 춥지? 오늘은 몇 분만 있다 가자.”
그리고 아빠에게 인사했다.
“여보, 오늘은 날이 꽤 차다.
선착장에 묶여있는 배들이 흔들거렸다. 펄럭이는 얇은 코트 속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밤마다 엄마는 바다를 가리키며 아빠가 저곳에 있다고 말했다. 바다를 가리킨 손가락은 한 곳을 짚지 못하고 정처 없이 움직였다. 엄만 어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을 버티다 내가 끝내 배위로 발을 뻗자 그제 서야 엄마는 돌아섰다. 집에선 할머니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술이 파래진 엄마를 보며 할머니는 혀를 찼다. 할머니가 “ 밥은?” 하고 물으면 엄마는 먹지 않았어도 먹었다고 항상 답을 했지만 할머니는 귀신같이 엄마가 굶은 채로 들어온 날엔 밥상을 차렸다. 엄마도 차려온 밥상을 마다하진 않았다.
그 후엔 둘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그 뒤에 나오는 예능프로그램까지 다 봐야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끄고 눈을 감았다. 피곤한 엄마는 대부분 드라마가 시작하고 20분이 되지 않아서 잠이 들고는 했다. 엄마가 눈을 감아버리는 바람에 텔레비전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귀로 배우들의 대사를 듣곤 했다. 엄마가 깨어있을 땐 들리지 않던 할머니의 훌쩍임과 한탄 소리도 함께.
할머니는 아빠를 미워하는 듯했다. 마당을 쓸고 있다가도, 마늘을 까고 있다가도 문득 아빠 물건이 눈에 띄면 곧바로 바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빤히 쳐다만 보았다. 할머니가 아빠의 옷들을 몽땅 다 태워버렸던 날에도 엄마는 오히려 마당 뒤에서 마른 장작 두 개를 집어와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아빠는 배를 타고 오징어를 잡으러 나간 날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대문 밖을 나가며 인사하는 아빠를 엄마는 다음날 있을 모의고사 대비 문제지를 만드느라 보지 못했다.
아빠는 나를 ‘솜’이라 부르곤 했다. 내가 발로 엄마 배를 차기하도 하면 신기해하면서도 솜방망이처럼 엄마 아프지 않게 살살 굴라는 것이 이유였다. 처음엔 남자아이 이름이 그게 뭐냐며 눈살을 찌푸리던 엄마였다. 그러나 아빠가 바다로 나가고 일주일이 지난 후 엄마는 할머니에게 나를 솜이라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하루빨리 보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점점 커질수록 엄마는 오르막길을 힘들어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엄마는 가끔씩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서 떨어질까 탯줄을 꼭 부여잡았다. 내 얼굴이 엄마의 주먹만 해졌을 때 엄마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머리가 엄마의 배 밑으로 돌려지기 시작했다. 머리맡이 배 바닥과 닿자 엄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는 달리는 버스에서 한 손엔 대파와 감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 땀을 흘리며 아파했다. 난 엄마가 아파하는 것이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 쉽게 나가지 못하고 우물 쭈물대었다. 엄마가 5시간이 넘도록 혼자 아파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울면서 달려와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옆으로 오자 배에 주었던 긴장을 풀었다. 난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힘차게 밖으로 나갔는데 밖은 너무 추워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도 할머니도 옆에 서있던 간호사 누나들도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