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을 마치고 헤어 나오지 못한 가을과 겨울의 사이 즈음,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방콕 항공권을 급 질러버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로가 누적되면 가장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결제'하는 나 자신.. 참 좋은 해소방법을 갖고 있구나 싶다.
태국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태국어가 주는 나긋함과 태국인의 기본 성품에 대한 좋은 선입견이 있었다. 태국어의 흐름(Flow)이 유독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OTT를 봐도 태국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친절함과 선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태국 드라마를 보며 더 좋아졌고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12월 말, 우리는 가득 채운 7일간 방콕으로 떠났다.
-
방콕으로 향하는 여정은 출발부터 몽글했다. 밤 비행기를 탄 적이 분명 있을 텐데, 이토록 벅찬 밤 비행은 처음이었다. 출발할 때 주황빛으로 물들었던 인천국제공항도, 문득 창 너머를 바라보니 눈높이를 같이하고 있던 무수한 별들과, 옆으로 누운 반달이 여행길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오후 8시 밤 비행기를 타고 방콕 수완나품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었다. 나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코로 한껏 숨을 들이쉬며 그 도시의 냄새를 맡고 기억하는 습관이 있는데, 방콕의 첫 향기는 달달하면서도 구수한 향이었다.
사전에 찾아본 정보대로 그랩택시를 불러서 호텔까지 수월하게 도착해서 체크인도 잘 마치고 짐을 정리하니, 어느덧 새벽 3시를 훌쩍 넘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쉬는 게 일정이었던 우리는 푹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컴컴해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어제와 달리, 커튼을 살짝 열자마자 호텔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결과 여름의 나무들, 그 모든 것들을 비추는 햇살이 우리를 반겼다. 어차피 씻을 거, 아침에 수영하는 국룰에 어김없이 동참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서 1시간 정도 바쁘게 놀다가 들어와서 정비하고 방콕 시내로 나섰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가르디나 아속(Gardina Hotel&Residence)인데, 이 호텔은 아속역까지 툭툭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이 가능해서 우리도 호텔 툭툭이를 타고 시내에 나가보았다. 첫 탑승 후기는 생각보다 쾌적했고 편리하고 짜릿했다. 툭툭이를 탈 때마다 뭔가 방콕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햇살을 느끼며 창문이 없는 '맨 눈'으로 거리를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아속역에서 내려 20분 정도를 걸어서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룽르엉 국숫집(Rung Rueng)'을 찾아갔다. 룽르엉은 6년 연속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되기도 하고 백종원 선생님도 추천한 로컬 맛집이라고 한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고 회전율도 빨라서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과 합석! 그래도 조금 기다리고 먹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다. 물국수-얇은 면, 비빔국수-넓은 면, 소식좌니까 스몰로 시켜서 먹었다. 쌀국수 같기도 하고 고기국물 같기도 하고, 먹은 순간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각나는 맛이다. 그리고 오렌지주스.. 태국도 무조건 오렌지주스는 공식이다.
맛있게 배를 채우고 또 맛있는 디저트로 배를 채우러 아속역에 있는 터미널21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갈 자신이 없어서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갔다. 터미널21은 각 층을 도쿄, 파리 등 다양한 도시를 출발과 도착으로 안내하는데, 여행자로서 또 다른 여행지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애프터유(After You)' 망고 빙수가게에 도착했다. 딱 한 자리 남은 테이블에 운 좋게 앉아서 망고빙수와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과일과 밥이 한 그릇에 있다는, 평상 시라면 강경하게 No!를 외칠 조합을 기대감으로 먹었다. 후기는 망고는 역시나 맛있었고 안에 들어있는 찹쌀이 쫀득함을 잡아줘서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계속 먹고 싶은 맛이었다. 여행지에서는 평소에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 도전하고 더 경험하려는 마음이 생기는데, 소소하게 하나씩 실천하면 내가 더 좋아지기도 한다.
한결 더 좋은 기분으로 터미널21 쇼핑을 시작했다. 팝마트에 가서 라부부랑 미니언즈랑, 곰돌이푸우 피규어도 사고 고메마켓에서 기념품리스트도 엄청 샀다. 덕분에 택스리펀도 받고 선물을 전할 생각에 마음도 따스웠다.
과도한 집중력 소비와 당 충족으로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어 호텔 툭툭이를 타고 숙소에 가서 쉬다가 마사지를 받으러 2차 외출을 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가장 평이 좋기도 하고 친동생의 강력 추천을 받아 '오키드 스파(Orchid Spa&Massage)'에서 아로마+허벌볼 2시간 코스를 예약했다. 저녁이라 선선해져서 30분을 걸어갔는데, 인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 당황스러웠지만 무사히 잘 도착했다. 마사지 전-후의 서비스도 훌륭했고 마사지받을 때에도 마사지사 분들이 꼼꼼하게 전문적으로 케어해 주셔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사장님이 물리치료를 하신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신뢰가 갔다.
오키드 사장님이 잡아주신 볼트 택시를 타고 하루의 마지막 일정인 쩟페어 야시장(Jodd Fairs)에 도착했다. 야시장 규모가 보통의 야시장이 아니었고, 심지어 여러 구역이 나누어진 말 그대로 Super 야시장이었다. 여러 의류와 잡화도 팔고 음식도 다양해서 보고 먹는 재미가 충분했다. 랭쌥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 홀린 듯 코끼리옷 구매하고 랭쌥, 망고쥬스, 닭꼬치를 깔끔하게 다 먹었다.
쩟페어 한 구역의 입구 근처에 캠핑 피크닉처럼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해 두었는데, 보기에 참 좋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따뜻하면서도 선선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각 자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것들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계속 눈에 담겼다.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사회적 유대로서의 가치가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또 오면 이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