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당신이 옳다
질병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선 사람에 대한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반응이 때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다.
그것이 사람 마음에 더 빠르게 스미고 와닿는다.
그런 일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탁월한 치유자가 된다.
어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라도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피하지 않고 물어봐줄 수 있고, 그걸 들으면서 이해하고, 이해되는 만큼만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도움이다. (P.76)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가장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파악인 동시에 상대에 대한 이해이고 앎이다. (P.127)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자전거의 왼쪽 페달이라면 자기를 살펴보는 일은 동시에 돌아가는 오른쪽 페달이다.
한쪽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즉시 자전거는 멈추고 넘어진다.
자기에 대한 성찰이 멈추는 순간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바로 멈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기 성찰의 부재는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된다. (P.229)
"네 말이 맞아." 혹은 "네가 옳아."라는 공감의 말을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적이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의 일기나 쓰다 만 습작들에 그 말을 건넨 순간의 흔적들이 있을까 싶어 쭉 훑어봤지만, 그럴수록 '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어조로 쓰인 글들의 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글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얼마지않아 '그래도 내가 그런 글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그럴만 상황과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라며 스스로를 변호하려는 마음이 들어, 그들 중 분량이 제법 되는 글 몇 편을 골라내어 읽었다.
하지만 자신이 쓴 글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자기변호를 위해 시작된 행위는 이내 '봐, 그럴 수밖에 없었네.'라는 합리화와 함께 '아니 다시 봐도 열받네?'라는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 다음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그나마 남아있었던 최소한의 객관성(혹은 그걸 유지해야 한다는 양심이었을 수도 있겠다)은 점점 옅어지다 마지막에 가서는 휘발되어 버렸다.
어느덧 나는 '이 상황에서 화가 안 나면 그 사람은 호구거나 성인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라는 식의 극단적인 자기합리화를 통해 이미 몇 년이나 지나버린 과거가 지핀 분노의 불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골라냈던 글을 전부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속으로 과거의 누군가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행히도 분노의 불을 지속시킬 장작들이 사라지자 격정적이었던 분노는 점차 식어가다 마침내 사그라들었다. 분노의 불길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마음의 표면에는 부끄러움이라는 잿더미가 남겨졌다. 소강된 분노의 불길과 함께 우울하게 가라앉은 마음 위에 부끄러움의 잿덩이들이 이리저리 날리며 마음을 탁한 잿빛으로 덮었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한바탕 휩쓸고 가고 나서야 공감의 말을 누군가에게 던졌던 마지막 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공감을 건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은 꽤나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어렴풋한 베일에 싸였던 어려움은 어느덧 확실히 까다로운 어려움으로 드러났다.
언제부터 공감을 이리도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을까? 인간관계에 대한 나름의 방법들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그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했을 때였나? 2019년부터 중반기부터 매달 다듬어오던 '인간관계도'는 어느덧 주변인들을 9가지 단계로 분류해냈다. 각 단계에 속한 이들에게 얼마큼의 애정과 노력을 쏟아야 적당한지,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리턴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꽤나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용한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포용력과 이해력을 넓히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고 다듬어 왔던 나의 인간관계도는 언제부턴가 서서히 변질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세웠던 기준들은 오히려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만 더했다.
어느새 내가 만들어낸 척도는 주변인들 중 누군가와는 관계를 단절해도, 또 다른 누군가는 소홀히 해도 된다는 정당화 수단으로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위한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할 예의는 '나도 네 삶에 개입하지 않을 테니, 너 또한 내 삶에 개입하지 마.'라는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마음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듯했다.
물론 이제껏 고수해온 그런 강박적이고 세밀한 거리 두기가 내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거리 두기 덕분에 대인관계에서 오는 불화와 불편,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를 편안함이 온전히 대체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립적인 삶의 방식이 주는 주는 남들과의 거리감은 편안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안겨주었고, 나는 그 외로움의 원인인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과 스트레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외로움이 마음을 적실 때면 내가 홀로 있는 상태의 한가로움을 고독감으로 혼동하는 것이라고 속단했지만, 그 결론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적은 없었다. 속단하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은 어쩌면 내가 이미 한가로움과 고독감이 맞닿는 애매한 경계점을 발견해 내고, 나 자신이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자주,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함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쉽사리 나의 기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느샌가 나 또한 내가 세운 기준에 의해 평가받는 가장 첫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나의 인격이 추가하고, 다듬고, 수정한 모든 항목들의 유용성, 현실성 등을 시험하는 가장 첫 실험체 역시 나 자신이었다.
'나는 00한 사람이다.'라는 평서문으로 빼곡히 채워진 머릿속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문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실제로는 00하지 않은데 00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 혹은 실제보다 더 00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 그 혹사의 과정에서 느낀 피로와 고통은 풀리거나 치유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연단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숭고한 문구로 덮였다. 그 위로 다시금 새로운 피로와 고통이 얹히고, 또다시 그럴듯한 문구들이 덮이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제서야 내가 남들보다도 스스로를 더 소홀히 여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고상하면서도, 배려심이 깊으면서도, 통찰력이 뛰어나면서도,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전문적인 특정 분야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고루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온전히 충족되지 못했다고 느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2. 절친/애인'에서 '3. 친한 친구'로, '4. 친구'로, '5. 업무적인 동료/신앙 공동체에서의 형제, 자매'로, '6. 지인'으로, '7. 인사만 나누는 사람'으로, '8. 얼굴/이름만 아는 사람'으로, 마침내는 '9. 손절한 사람'으로 차츰차츰 강등시켰던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앞서 언급한 높은 기준들을 전부 충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에 비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 나는 자주 패배감에 빠져 우울해지거나, 어떻게든 그 불가능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마음이 조급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안에는 지극한 자기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장애물 하나 없는 그 공허한 내부는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라는 가혹한 생각이 속도와 힘을 잃지 않고 이리저리 튕기며 여기저기로 그 소리를 무한히 공명시키는 듯했다.
불현듯 "너는 네가 갖춘 것에 비해 너무 자신감이 없는 것 같구나. 너는 아빠가 네 나이였을 때보다 갖춘 것이 훨씬 많은데 말이다."라며 언젠가 아버지께서 은근하게 건넨 말에 "그건 아빠가 내 '아빠'라서 그렇지. 아빠가 아들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는 건 어려운 거니까."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적이 떠올랐다.
곧바로 "그리고 아빠 때랑 나 때랑은 시대가 다르잖아."라는 말을 쏘아붙이려 했지만, 왠지 앞서 뱉어낸 말들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나를 말없이 그윽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슬픈 시선에 괜히 뜨끔해서 반쯤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때 나를 보는 아버지의 눈망울 속에 있던 슬픔처럼, 내가 이제껏 혹사했던 나 자신 또한 그와 비슷한(혹은 더한) 슬픈 눈빛을 절절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봤을 때,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내가 들어가야 마땅한 '1. 자아/가족' 란에 넣어둔 적은 없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진단하는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의식은 실제의 나보다 훨씬 거대해졌지만, 그 거대한 자의식을 감쌀 자기애는 턱없이 작았다. 과잉된 자의식이 걱정과 강박으로 점점 더 부풀면서 안 그래도 작았던 자기애는 점점 더 위축되어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린 듯했다.
사랑으로 충족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공간들에서 불어오는 시린 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랑만이 채울 수 있는 좁고 깊은 구덩이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없었고,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칭찬과 인정은 그들과 작별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했던 행동들이 헛수고였다는 사실에 마음속에 부는 바람은 더욱 시리게 느껴졌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감정들을 서로 끈적하게 엮여 가슴에 목으로, 목에서 코와 눈으로 뜨거운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그 액체에서 그동안의 죄책감, 미안함, 억울함, 서러움, 안쓰러움, 외로움의 온도가 느껴지자 그 물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눈꼬리에서 처음 시작된 눈물은 이내 시야를 흐르게 할 정도로 눈망울 앞에서 잔뜩 모였다가 어느 순간 터지며 이리저리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었다. 손등이나 손바닥으로 그 물줄기를 훔쳐낼까 잠깐 생각했지만, 볼을 가르다 턱 밑으로 떨어지는 그 눈물이 마치 나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어 그냥 두었다. 흰자위에 핏빛 실선이 수없이 그어질 정도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졸졸 흐르던 눈물은 점차 방울져 떨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그 흐름을 멈췄다. 격양됐던 감정들도 흘러내린 눈물과 함께 증발된 것이었는지 눈물샘이 점차 닫혀감에 따라 진정되어 차분한 상태로 향하고 있었다.
눈과 코로 한동안 수분을 쏟아냈던 탓에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수분과 함께 그동안 응어리진 감정도 함께 쏟아졌던 것이었는지 마음은 홀가분했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기에 매트리스에 몸을 뉘자 금세 잠이 들었다.
눈이 다시 떠진 시각은 새벽 6시 언저리였다. 3시간 정도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도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피로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시금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어제, 아니 불과 3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금 찬찬히 되돌아봤다.
양쪽 뺨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눈물을 쏟아냈던 순간이 떠오르자, 격양된 감정에 휘말려 주체 없이 눈물을 쏟아냈던 게 내심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기에 오랜만에 지금과 같은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그때 내 얼굴은 제법 봐줄 만했겠네.'라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일정표를 켜 오늘 할 일을 둘러보던 중, 2023년 6월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매달 마지막 날은 '인간관계도'를 업데이트하는 날이기도 했다. 6월 29일. 업데이트 일정을 고작 하루 앞두고 이토록 처절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감사함이 그 위에 덮였다.
이해와 존중은 별개의 영역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게 존중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내심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남들과 스스로를 무시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그동안 해왔던 그런 거북한 행동을 피하려는 나름의 노력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내심 들기도 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단순히 '거북함'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존중할 수 있다는, 그리고 존중하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자연스럽게 그 생각대로 행동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매달 평가 기준을 수정하고 주변인을 그 기준에 맞춰 나열하는 등 이제껏 해왔던 작업과 비교해 봤을 때, 그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 그나마 수월할뿐더러 의미도 있어 보였다.
'어쩌면 존중하는 과정이 자연스레 이해와 공감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오랜만에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트이자 아직 현실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런저런 기대감(망상)들이 여러 갈래에서 뿜어져 나왔다.
머릿속은 그런 망상들의 놀이터가 되어 왁자지껄해졌지만, 그 소란스러움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극히 일부일지라도 그 망상들 중 몇몇은 결국엔 기대한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라는 또 다른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이 또한 다른 종류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그런 행복한 망상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인간관계도의 제목을 타이핑했다.
'인간관계도<Final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