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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Mar 11. 2024

천관산 동백숲에서

천관산 동백숲에서

                                  유용수


어젯밤 매몰찬 찬비에 방글었는가

삭혀내지 못한 가슴앓이에 맺힌 붉은 망울처럼

뜨거움을 숨기고 붉은 날을 기다리는가

떨어진 꽃, 서러움에 동박새 울부짖고

산도랑 바위틈에 널브러진 푸른 잎 

흔들리는 소리 들었는가 

    

어젯밤 매몰찬 찬비에 피었는가

늙은 나무 멍든 자리에 가부좌 틀고

보리밭을 바라보던 그 쓸쓸함으로 피었는가  

  

침묵하는 달빛에 고열을 앓던 붉은 꽃

양암봉 계곡에 새겨진 울음 섞인 전설을 기억하는가

어미젖을 빨면서 보채던 어린 자식 울음소리 

숯가마 노인, 구성진 육자배기 한 가락이 묻힌 길 

지게목발 내려놓고 숨 쉬던 자리에서 밤새도록 두런거리던 

검붉은 꽃들은 피었는가   

 

검버섯 보듬고 떨어진 꽃들의 울음소리는 들었는가     

새벽녘 매몰찬 찬비에도 장중하고 청아한 천관사 예불 소리

신음하던 꽃, 오소소 떨어진 꽃, 다독이더니

소란스럽지 않은 수줍음으로 피었는가  

   

어젯밤 매몰찬 찬비에 심장에 숨겨진 기억까지 피고 말았는가      

새벽녘 동박새와 눈 맞추고 미소 짓던 그 꽃, 떨어질 때 

    

무릎 꿇고 기도하던 그 사람은 다녀갔는가 


    

○ 노트

천관산 동백 숲은 수령 약 50년부터 200년 이상 되는 동백나무 2만여 그루가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전라남도가 선정한 아름다운 명품 숲 12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오래전 양암봉 아래 군락하고 있는 동백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굽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원래의 몸을 잃었고, 잘린 밑동에서 맹아가 자라서 숲을 이루고 있어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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