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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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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Nov 20. 2015

적과의 동침

 생각이 바뀌는 온도

휴학하고 곰처럼 겨울잠을 자던 시기가 있었다.

친한 형이 오랜만에 연락이 와선 '잠만 자지 말고 용돈이나 버는 게 어떠냐'며 벽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해왔는데 하필이면 장소가 '고양이 카페'였다.


어릴 적부터 강아지는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고양이는 왠지 무서웠다. 갑자기 달려와서 할퀴고 도망갈 것 같아 겁도 나고, 움직임이나 소리 내는 것도 괜히 무서워 한참을 망설이다, 그래도 별일 있겠나 싶어 하기로 했다.

도착하자 걱정은 커졌다. 길에서 한 마리만 마주쳐도 무서운데, 스무 마리 가까이 와 함께 있어야 한다니. 게다가 손님이 있는 시간엔 작업을 할 수가 없어 문 닫은 시간에 혼자 남아 밤새 그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다 가고 문을 닫으니, 잠만 자던 녀석들이 자기들도 퇴근이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게으르게 뭉그적 거리던 녀석들이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싸우질 않나,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많아지고 정말 그들만의 시간이 찾아와 나는 더욱 긴장했다.


그리다 보면 한 번씩 다가오는 고양이들을 물리치며 그리느라 힘이 두 배는 들었던 것 같다.



새벽이 되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는데 중간에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등위에 자리를 잡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접촉은 한 번도 안 하고 싶었는데 온몸을 밀착하고 있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움직일 수도 없고 순간 얼어붙었는데,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근데 따뜻하다?

등이 뜨끈뜨끈해 기분이 좋아지자 갑자기 고양이도 좋게 느껴졌다. 그동안 무서워하거나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대상들이 혹시 잘 모르는 것은 아니었나? '뭐든지 직접 겪으며 느껴봐야 참 모습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날이다.  





▼그날 했던 벽화 작업 몇 장



실제 선반 위에 있는 것처럼 위치를 잡고 그림자를 그려준 카페 내부 벽화




화장실은 공간이 좁아 그림을 보는 거리가 가까워 그림도 아기자기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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