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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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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Nov 22. 2015

엄마와 롤러블레이드

롤러블레이드 구입기

어릴 때 문방구를 참 좋아했다.

박스째로 쌓인 장난감을 보며 갖고 노는 상상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심심할 때마다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 신상품으로 들어온 롤러블레이드.

‘이걸 타면 얼마나 재밌을까?’ 자고 일어나도, 학교를 다녀와도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질 않아, 평소 학용품 외엔 부모님께 사달라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었는데 어머니께 한번 여쭤봤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 차원이었을까? 바로 사주실 법도 했는데 용돈을 모아 사라고 하시니 그날부터 저금을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고정적인 용돈은 없었기 때문에 평소 도와드리는 집안일을 전면 '유료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크게 써 붙이곤, 신발장 안에 잘 안 신으시던 구두까지 모조리 닦고, 거실 바닥 걸레질도 괜히 한 번씩 더 하며 집중적으로 용돈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사고 싶은 욕심을 따라잡을 수 없어 말도 안 되는 통장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름하여 '정복은행 행복통장'

개구리 얼굴 모양인 수첩에 어머니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통장은, 돈을 저금하고 하루가 지나면 금액의 절반이 이자로 붙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자가 붙은 금액은 원금이 되어 또 이자가 붙는, 직장인들이 꿈에나 그릴법한 복리 이자 상품이었다. 내 맘대로 법칙을 적었는데 한번 피식 웃으시곤 어머니도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며칠이 지나 수첩엔 3만 원이 적혔고, 난 난리라도 난 듯 달려가 어머니께 돈을 받아선 단숨에 문방구로 달려갔다.


드디어 그토록 사고 싶던 롤러블레이드를 사는 이 기쁜 순간!



 '아저씨는 얼마 전에 3만 원이라고 하셨는데요?' '에이 5천 원만 좀 깎아주세요' 이런 말을 그땐 할 줄 몰랐다.




신나게 뛰어나간 만큼, 신나게 들고 올 내 모습을 기대하며 창문으로 내다보고 계셨던 어머니.


엄마를 보자 갑자기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며칠 사이 5천 원이 오른 건지, 아줌마가 가격을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사질 못 했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꺼이꺼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었던 그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문방구로 갔다 온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달이 뜰 때까지 신나게 동네를 누볐던 기억이 난다.

'롤러를 타고 달려보자 씽씽씽~ 거친 바람을 헤치며 씽씽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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