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거친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이면 파도를 타는 것도 어렵지만, 그 거친 파도를 헤쳐 라인업*으로 나가는 것이 더 힘듭니다. 아무리 팔을 저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 자꾸만 부서지는 파도에 겨우 온 그 길로 다시 떠밀려 갈 때, 꾸역꾸역 바닷물을 마시며 겨우 숨을 쉬고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데 커다란 파도가 또!!!! 다가오는 모습이 보일 때, 난 연어를 떠올립니다. 난 왜 이곳을 거꾸로 오르고 있는가. 나와 함께 출발한 다른 연어는 잘도 올라가 이미 라인업에 앉아 파도를 기다리는데, 왜 난 아직 여기인가.
그런데 이 장면, 어쩌면 익숙하단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서퍼들은 말합니다. 서핑은 인생과 닮았다고. 파도에서 삶과 같은 것이 밀려온다고. 나와 같은 진지병 환자라면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나와 서핑을 단단히 연결해 놓아주지 않습니다. 서핑으로 인해 가치관과 생각이 변하고, 현재가 변하고, 이어 나의 미래까지 변화되고 있단 사실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림이네사진관
#1
어느 날이었습니다. 함께 서핑하는 동생과 송정에서 해운대로 넘어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던 길, 타야 할 버스가 건너편에서 오는 걸 본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마침 신호가 걸렸고, 한참을 뛴 보람이 없었죠. 그때, 헥헥 거리며 우리는 말했습니다. “괜찮아, 저건 우리 버스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 그리고 버스는 또 오는 거지”.
세상에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파도란 없습니다. 태평양 어디선가 시작해 내 앞에 도착한 파도는 모두 고유하죠. 그렇기에 만약 파도를 잡았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이자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경험하듯 최선을 다한다 해도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죠. 우리도 수없이 파도를 놓칩니다. 잡더라도 원하는 대로 타지 못하는 일도 많죠. 그러나 과히 속상해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양만 다를 뿐 파도란 언제고 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하지만 유일하지 않은 것.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는 때때로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놓치고도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이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전보다는 훨씬 ‘최선’과 ‘내려놓음’의 전환이 빨라진 것 같습니다.
#2
서핑에는 “하나의 파도엔, 한 명의 서퍼”란 룰이 존재합니다. 파도의 가장 높은 곳, 또는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곳을 ‘피크’라 하고, 그 피크에 가까이 있는 사람, 또 그중에 오래 기다린 사람이 그 파도에 우선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그의 파도를 뺏어 타거나 그의 라이딩을 방해해서는 안 되죠. 이를 형태에 따라 “드랍” 혹은 “스네이킹”이라 하는데 즉각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아주 큰 잘못입니다. 또한 계속 같은 사람이 파도를 독점하는 것도 서핑에선 옳지 않은 행동이라 말합니다. 로테이션을 하며 다른 이도 파도를 탈 수 있게 양보해야 하죠. 이렇게 파도의 주인이 그 파도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서로를 존중하는 것, 배려하는 것이 서핑의 암묵적 약속이고, 서핑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지를 배울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3
내가 기다리는 위치에 ‘피크’가 오면 우리는 말합니다. 저건 ‘내 파도’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 파도’를 만날 수 있을까요. 서핑에서 많은 파도를 잡는 사람들은 파도를 보는 눈이 좋습니다. 지금 오는 파도의 형태와 속도를 생각하며 파도를 잡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로 이동해 기다리죠. 위치와 타이밍이 맞았을 때 그 파도는 나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라인업에서 우리는 한 장소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탈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잡기 위해 항상 이동합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오는 수많은 기회와 연결해도 같은 맥락일 것 같습니다. 제자리에서 앉아 있어서 찾아오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나의 집중력과 노력이 있었을 때 기회도 오는 것이죠.
#4
이렇게 파도를 타기 위해 먼바다를 집중해 보다 보면 마음의 잡생각이 사라집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더라도 바다에 들어가면 정말 파도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날엔 서핑을 엉망으로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생각을 비우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파도 위에 실질적으로 올라서는 시간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라이딩이 1분을 넘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아주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서퍼는 보내며 바다에 있습니다. 바다에서 우린 스포츠보단 명상을 하고 있단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5
어느 날 TV 프로그램 <알쓸신잡_양양편>에서 소설가 김영하 선생님이 서핑에 대한 이야길 하는 걸 보고 놀란 적 있습니다.
“(서퍼들은) 바다만, 파도만 생각한대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상관 않고. 저 파도를 탈 수 있을까? 파도를 보내고, 기다리고. 떠 있는 동안 ‘현재’만 생각하는 거죠. (서핑을 체험해보니) 머리가 약간 텅 빈다고 할까요? 굉장히 편안하더라고요. 내가 노력한다고 좋은 파도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오늘 좋은 파도가 오면 감사히 타고, 이 파도 지나면 저 파도가 오는 법이죠.”
서핑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매우 정적인 순간의 집합이며, 기다림에 대한 받아들임이 (특히 파도가 귀한 한국에선 더욱) 중요합니다. 길게 서핑을 체험하진 않았음에도 그 부분을 이해하다니.. 역시 김영하 선생님이네요. 바다에 떠있는 동안 현재만 생각하게 된다는 그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 역시 서핑 후 삶의 영점이 ‘현재’로 잡혔고, 그로 인해 만족스러운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를 산다’의 의미를 ‘대책 없이 논다’ 혹은 ‘내일 죽을 듯 오늘만 산다’로 오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 설명하자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것을 잘 해내고, 내일에 대한 걱정보단 오늘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 정도입니다.
#6
내가 다니는 서핑 숍 사장님과 함께 파도를 기다리던 중 그가 말했습니다. “넌 보드를 타는 게 아니라 파도를 타는 거야. 보드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다가오는 파도, 내가 올라선 파도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해.” 살다 보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잠시 멈춰 생각해 보려 합니다.
지금 이것은 나에게 파도인가, 혹은 그 위의 보드인가.
#7
이전에 잡지에 서핑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 수많은 서퍼를 인터뷰 한 적 있었습니다. 당시에 느낀 점은 연차와 상관없이 서핑에서 삶을 배우는 이가 많다는 점,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삶을 서핑에 두고 있는 서퍼들의 고민은 훨씬 깊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서핑이 활성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도를 하나라도 더 타려고 욕심부릴 수밖에 없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스킬로 좋은 성적을 내려 과도하게 경쟁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고, 그러면 서핑은 하나의 운동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서핑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사람들과 교감하며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 서핑엔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나눠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도, 취업도 심지어 결혼도 경쟁입니다. 그. 모든 걸 내려놓고 바다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그것을 추구하는 게 바로 서핑입니다.” - 타일러 서프, 타일러 서퍼
“어릴 때 우린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공부하고, 회사에선 상사와 시스템에 맞춰 일을 하고,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죠. 그러다 어느 순간 노후가 왔을 때, 그제야 자기 자신의 행복에 눈을 돌리곤 합니다. 서퍼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에 좀 더 빠르게 눈을 돌렸고,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단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서핑을 하고 있구나’에서 ‘나도 서핑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에든 서핑에든 인생을 살며 어디에든 한 번은 미쳐봤으면 좋겠습니다.” - 양양서핑학교, 루비 서퍼
#8
한국 국가대표로도 활동한 적 있는 조준희 서퍼는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해외 유명 서퍼들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서핑을 시작하지 못해서 그들처럼 화려하고 멋지게 타지는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음 파도를 탄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순간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서핑을 하기 전과 후의 삶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서핑이 얼마나 멋지게 내 삶을 바꿨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외 서퍼들을 부러워만 하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던 이야기였죠. 나보다 더 나은 환경의 것들만을 부러워하고 좇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글을 통해 서핑은 단순히 스포츠 그 이상의 것이란 사실이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처음 서핑을 시작할 땐 물 위에서 일어나 보드를 타는 레저로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를 만끽하고 사람들과 파도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서핑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Life is better when you surf”라는, 뻔하지만 강력한 문장이 가슴에 박힐 것이에요. 그때 왜 우리가 서핑을 사랑하는지 당신도 알 수 있으며, 함께 할 것이라 믿습니다. 기다릴게요.
2016년 03월 01일
자주 가는 서핑 샵 옆 식당에 이런 문구가 있다.
"왼쪽으로 가고 싶다면 왼쪽을 보라”
여담으로 파도가 좋은 날에 그 식당은 문을 닫는다
“사장님 파도 타러 갔어요”
2017년 01월 03일
평화로워 보이는 이 바다에서 일행의 보드 핀 박스를 박살 냈고, 진심으로 죽을 수 있단 공포심에 오히려 차분해진 통돌이를 맛보았는데 (구조되어 겨우 나왔다), 이 모든 속상함은 단 한 번의 인생 라이딩에서 ‘까짓것’이 되었다.
바다란 참 들어가고 볼 일이다.
2017년 02월 25일
참 이상해. 서핑 이야길 하다 보면 그 끝엔 항상 인생이란 단어가 나오더라. 태웅오빠가 말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해도 손끝에서 가시지 않던 추위를 소머리국밥으로 물리치던 참이었고,
누군간 새벽까지 놀고선 또 아침부터 바다에 들어간 이야길, 누군간 얇은 슈트로 겨울 바다를 견디는 이야길, 누군간 자신에게 맞는 파도를 타겠단 이야길 하던 참이었다.
피곤함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흐릿하게 소머리 국밥을 쳐다보다가 괜히 속으로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파도의 끝은 결국 그 단어인 거지.
2018년 06월 25일
파도에 내팽개침을 당할 때 나의 종이 인형 같은 존재감을 이야기하자 원재가 웃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선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잖아. 그래서 가끔 난 저 사람보다 왜 잘하지 못할까. 혹은 이기고 싶다.라는 생각에 괴로울 수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인간으로서 감히 이길 수 없는 자연을 만나 겸허히 질 수 있는 걸 배운다면, 인간관계에서 괴로운 마음이 들 때 나를 다스릴 수 있는 혹은 저런 마음이 덜 들도록 할 수 있는 훈련이 될 것 같아. 참 좋네.”
2019년 02월 01일
누군가 나를 향해 칭찬했을 때, “에이 아니에요” 대신 “고맙습니다”라고 답하기로 했다.
2019년 05월 16일
나중 언젠가 나의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함께 바다에 머물고 파도를 타고 햇빛을 쬐고 모래를 털어줘야지. 그리고 이런 삶을 살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웃으며 말해줘야지.
패들 : 깨지지 않은 상태의 파도를 탈 수 있는 바다 한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