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영화 <라 비 앙 로즈> (2007, 올리비에 다한)
아버지는 전선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노래를 하기 위해 떠났다. 수많은 남자들이 드나 드는 여자들의 집. 소녀는 그 곳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소녀는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달리기도 하고 싶고, 자전거도 배우고 싶은 소녀는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위대하신 성모 마리아님…”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러 눈을 뜨게 된 소녀는 기도의 힘을 믿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매 순간 기도한다.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랑하세요”
젊은 여성들에게는요? “사랑하세요”
어린 아이들에게는? “사랑하세요”
영화 <라 비 앙 로즈>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마르셀의 사고 소식을 듣고 주저 앉아 오열하던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문 밖의 무대위로 걸어나가던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장면이 지니는 의미는 간단하다. 사랑을 잃고도 사랑을 노래해야 하는 그녀의 삶에 대한 짧고 모난 축약.
죽음이 두려우세요?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외로움은 두렵네요”
그녀는 매 순간 기도한다. 그 간절함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는 매 순간 사랑한다. 그 무엇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영화 <라 비 앙 로즈>는 에디뜨 피아프의 삶을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삶의 순간순간을 자르고 붙여 완성되었다. 그 자르고 붙여진 흔적은 불규칙하다. 어느 순간은 높고 어느 순간은 낮다. 어느 순간은 너무 높고, 어느 순간은 너무 낮다. 이별을 마주한 어린 소녀의 눈물로 범벅된 장면은 환대로 가득찬 숙녀의 귀국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연인과 달콤한 말로 가득찬 편지를 주고 받으며 활기차던 숙녀의 모습은 술과 약물로 얼룩져 죽음에 가까워진 그녀 40대로 이어진다. 기쁨(喜)과 슬픔(悲), 관객은 감정의 낙차를 바라보며 인생의 찬란함을 느끼거나, 그 뒤안길에 진 그늘에 놓이기도 한다.
낙차가 클수록 영화는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끝, 그녀의 눈이 감기기 직전에서야 드러내지 않던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들춰낸다. 품 속에 숨겨 놓은 인형을 건네던 아버지와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던 두 살배기 딸. 이 순간들의 재현이 그녀를 위한 것일까? 영화적 순간을 위한 것일까?
그 무수한 물음에도, 조용한 해변에 앉아 진실된 친구들의 존재와 자신의 삶이 지혜로웠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는 그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존재 이유임을 증명한다.
글_ 최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