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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영감 Feb 18. 2016

프랑스 영화가 지닌 매력, 영화 <녹색광선>

#26 일일영감의 잡담, 영화 <녹색광선>

지난 주 일일영감의 잡담에서 소개해드렸던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에 이어, 오늘은 1980년대 뛰어난 '문학적 영상미'로 침체되었던 프랑스 영화를 부흥시키는 계기된 작품 <녹색광선>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물결(New Wave)’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의 일원이었던 에릭 로메르의 연출작입니다. 특유의 감성과 매력을 지닌 프랑스 영화에 관심 있는 분에게 추천드립니다.  



녹색광선 (1986, Eric Rohmer)



청승맞게 혼자 여행하기



<녹색 광선>에서 델핀느가 친구들을 따라 셰르부르에 여행 왔다가 이탈해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양옆으로 초록색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고 있다. 이 터널 같은 암녹색 공간으로 이끌리듯 걸어가는 델핀느의 뒷모습. 그동안 내내, 그다지 유별날 것도 없어 보이는 델핀느는 왠지 모르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여행을 같이 떠날 파트너도 구하지 못한 채 그녀는 청승맞게 혼자 걷고, 혼자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또 혼자 운다. 그녀는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혼자인 상태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혼자 여행한다. 혼자 여행하기는 델핀느의 경우처럼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고 그 대상은 미지의 이성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매 순간 짝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다른 말로 해보자. 혼자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날에 대한 그림이 없는 사람들이 혼자 여행할 수 없다. 아무런 확신 없이 뭔가 얻을 것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새로운 사람, 사건,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열차에 오른다.

영화 속 바닷가 한 할아버지에 따르면 녹색 광선이란 해가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 빛의 굴절에 의해 태양의 윗부분이 몇 초간 녹색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매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날씨가 흐리거나 구름이 낀 날에는 더욱 보기 힘들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여러 차례 기다리면 영영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의 여행 끝에 델핀느는 결국 기다리던 결말을 맞았을까? 나는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 에릭 로메르는 당신이 별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냥 지금의 상태가 그럴 뿐이니까, 그저 기다리라고 안심시킨다.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녹색 광선>을 추천하고 싶다.

글_정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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