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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영감 Jul 21. 2016

대화로 완성되는 영화

#87 일일영감의 잡담, 영화 <환상의 빛>


현재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 영화감독을 꼽는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7월과 8월에만 국내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세 편이나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오늘 일일영감의 잡답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환상의빛>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95년 작이지만 국내 정식 개봉은 올여름이 처음입니다.
* 아래의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환상의 빛 (1995, 고레에다 히로카즈)

1. 두번이나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한 ‘유미코’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할머니의 뒷모습은 그녀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이쿠오의 뒷모습 또한 그녀가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남편의 자살 소식을 알게 된 그녀는 덤덤하다. 아니 어쩌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더욱 입을 닫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그녀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으며 그녀의 독백을 훔쳐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가 포함된 일상의 시간을 담는다. 감정을 건드는 많은 영화속 극적인 장면들. 이것들을 우리네 삶으로 옮겨 놓고 보면 그저 일상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한 ‘사건’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클로즈업 같은 기교 또한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감독은 사건에 흔들리는 유미코가 아닌 그저 그녀를 포함한 일상을 담는데 주력한다.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2. 유미코는 이전처럼 꽤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하며, 조용한 바다 마을에 적응해나간다. 남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고향을 찾은 그녀는 이쿠오와 자주 가던 찻집에 들러 그가 자살하던 날 밤의 이야기를듣는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야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다. ‘이쿠오’의 기억이 담긴 열쇠고리를 손에 꽉 쥔 채. 그리고 장례 행렬을 따라 걷던 그녀가 타미오에게 묻는다. “왜 죽었을까?” 일반적인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 표출은 극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과 달리 ‘환상의 빛'에서 감정 표출은 극을 해소의 국면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내내 입을 닫고 있던 그녀의 울음 섞인 한마디는 상실의 시간을 버텨낸 그녀의 ‘힘겨운 한 발짝 떼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유미코의 옷은 마치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처럼항시 검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부재를 대면하는 감정이 그녀의 옷에 녹아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계절을 지나온 그녀가 하얀색 옷을 입고 말을 건넨다. “날씨가 참 좋아졌죠?”



3. 영화의 끝에서 타미오는 ‘환상의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영화 전반에 걸친 ‘답’이아니라 ‘물음’에가깝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답이 아니라 물음이 남았으면 해요. 그 물음은 관객들의 몫입니다. 그럴때 영화는 비로소 ‘대화’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은 원작소설과 달리 공백의 크게 힘을 빌린 영화다. 그 공백에 담긴 보이지 않는 질문이 관객들을 괴롭히기도하는데,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7월 7일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환상의빛>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개봉을 했으며, 신작<태풍이 지나가고>와 2005년 작 <걸어도 걸어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가 던질 각기 다른 질문에 그의 팬들은 어느 때보다 더 꽉 찬 여름을 보낼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_ 최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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