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조각은 짧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시간은 유한하나 연속적이고 멈출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지만 그들과 나는 극히 작은 시간만을 공유한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서로의 삶이 아닌 극히 작은 조각일 뿐이다.
중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열 세살 이후 본가에 자리를 잡고 산 적이 없다. 그렇게 자연스레 부모님과 공유할 내 시간이 극히 한정되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의 다음 챕터를 시작함과 동시에 주변인이 변화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생활 반경이 변하는 거니까. 더구나 나는 어쩌다 보니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나라를 옮긴 꼴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졸업식을 마치면 내 주변인은 완전히 리셋되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극히 작은 시간 조각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공유받는 그들의 조각은 짧고 유한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 조각이 끝나면 다음 조각이 시작된다. 무언가의 끝은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이다. 봄이 찾아오고 벚꽃이 피었다. 사람들이 벚꽃에 열광한다. 석촌호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일주일 남짓한 벚꽃의 만개를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고작 일주일 남짓이다. 짧기 때문에 우리는 벚꽃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고 짧기 때문에 우리는 그 봄이 더 소중하다고 느낀다. 짧은 봄의 조각을 잡기 위해 우리는 사진을 찍고 밤낮 할것 없이 벚꽃을 본다.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극히 작은 시간의 조각들도 이와 같다. 짧고 유한하기에 더 소중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각각 다른 시간의 조각을 나눠주고 그들 역시 나에게 유일무이한 시간의 조각을 나눠주기에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의 조각은 매우 작으나 매우 특별하다.
짧은 봄이 끝난다. 꽃이 지고 옅은 녹음이 피어오른다. 봄은 끝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초록의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여름의 시작이고 새로운 조각의 시작이다.
내가 봄에 차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여름이 되고서야 이해할 때가 있다. 가을이 되고서야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될 때도 있다. 심지어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 어느 사람이 내 자신인 경우도 있다. 과거에 공유받은 시간의 조각을 먼지 속에서 건져내 다시 쳐다보면 그 시간의 조각이 다르게 보이곤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계절이 나를 내가 되게끔 한다는 것을 알아나가는 것.
그리고 때때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이해해주는 것.
“한 겨울에야 나는 내 안에 여름이 계속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알베르 카뮈
그 모든 과정은 내 작은 시간 조각들의 모음이고 그 조각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 조각이 쌓여 내가 되고 기억이 쌓여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