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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30. 2024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아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초등학교 2학년, 인생 첫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다. 5-6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 골든벨에서 어째선지 2학년인 내가 나갔고, 우승을 해 버렸다. 책을 정말 많이 읽었었기 때문에 고학년 대상의 책을 읽는 것도, 그 내용들을 기억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2학년 때 쌓아놓은 상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책을 읽었다. 스물 넷의 내가 봐도 썩 쉽다고 느껴지거나 어린이용 책이라고 느껴지지만은 않을 책들을 수없이 읽었다. 교내, 교외 대회에서 온갖 상을 탔다. 아무래도 인생의 황금기가 8살 때, 너무 일찍 찾아왔나 보다.


엄마와 아빠가 기뻐했다.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담임 선생님도, 교과 선생님들도, 학원 선생님들도 나를 대견해했고 예뻐했다. 인정받는다는 게 뭔지 배웠다. 그리고 어른들의 칭찬에서부터 나는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그렇게 초등학교 내내 나는 “잘하는 애”였다. 바이올린을 켰고, 그림을 그렸고, 스케이트를 탔다.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타 왔다. 주말이면 영재교육원에, 오케스트라에 나갔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맡았다. 학예회를 진행하는 사회자였고 운동회에서 선서를 하는 학생 대표였다. 모두가 나를 알았고 모두가 나를 인정했다. 내 작은 세계에서 나는 최고였고, 모두가 나를 인정해 줬을 때 나도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나는 나를 그렇게 사랑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야만 비로소 관심과 사랑을 느끼는 아이가 되었지만 내 스스로도 그걸 몰랐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꽤 강하게. 학교가 끝나면 엄마의 차가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나는 여러 학원을 돌아다녔다. 학원과 학원 사이 비는 시간에 엄마가 싸다 준 도시락으로 차 안에서 저녁을 해결했고 저녁 수업이 끝나면 퇴근하는 아빠 차를 타고 귀가했다.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시내로 놀러 가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여전히 모든 걸 잘 해내는 아이였지만 모든 걸 잘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했고, 인정받기 위해 뭐가 됐든 나는 그것을 잘 해내야 했다. 그 부담은 나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기대에서, 부담감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것도 유학을 결정하게 된 무의식적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때마침 찾아온 사춘기는 고집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두어 달 만에 급하게 집을 떠났다.


어른이 된 후 어느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사랑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칭찬의 말으로부터 사랑을 가장 많이 느낀다. 연인이든, 친구든, 공적 관계든 나를 인정하고 칭찬한다고 언어로 표현해 주어야만 나는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문득 내가 기억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크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첫 경험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사실이 단순히 뿌듯했던 것뿐 아니라 그걸 통해 나는 처음 사랑받는다는 걸 실감했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남들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할 때만 내 스스로를 인정했고 사랑했다.


결과가 좋지 못해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못하면?

그러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나?

아닌 걸 머리로는 알았다. 그러나 인정받은 후에 스스로를 사랑받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나는 칭찬이 없을 때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무언가의 결과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해낸 무언가와 나를 동일시했다. 내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나 스스로를 내가 해내는 일들과 떨어뜨려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나 자체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내 세계에서 내가 최고가 아니게 되더라도 나를 사랑해 주자고 다짐했다. 모든 것에 최고일 수는 없지 않느냐, 가끔은 실패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고, 그 사실에 굳이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이 근거가 될 필요는 없다. 너는 너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되뇌는 중이다.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결과가 너를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네가 사랑하면 된다. 너는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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