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글을 써 보려고 생각은 하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세이브해 둔 글들을 다 풀고 나서 처음부터 새 글을 쓰려니 쉽지 않다. 역시 꾸준하기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일 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 돌아왔다. 5월 15일, 내 생일이다. 근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소모임에 나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올해 생일은 얕고 넓은 인간관계 속에서 맞게 되었다. 생일 초를 다섯 번이나 불었다. 생일이 아닌 생일 주간을 챙기게 되었다. 자취방 문 앞에 생일 선물 택배가 쌓였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몸소 느껴져 행복했다. 일주일 내내 많이 웃었다.
5월 12일, 두 달여간 준비하던 밴드 공연날이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까지 섰던 그 어느 무대에서보다 신나게 뛰어놀 수 있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나를 보러 와 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공연자들이 모인 뒤풀이 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아쉬웠던 점들을 털어놓고 있을 무렵, 불이 꺼졌고 생일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케익을 들고 있던 건 우리 팀 언니 오빠들이었고 옆에 있던 언니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간 나는 올해 첫 생일 초를 끄게 되었다. 두 달 전만 해도 내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축하를 받고 있었다. 두 달 동안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나고 합주하고 놀며 함께 성장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사람들이라 공연이 끝났다는 게 아쉬웠고 내 생일을 가장 먼저 챙겨준 게 감사했다. 우리는 다음 날까지 놀았다.
5월 15일, 생일 당일에는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했다. 새벽 일찍 울퉁불퉁한 산에서 골프를 빙자한 등산을 했고, 라운딩이 끝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릉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예쁜 케익을 사 와서 초를 불었다. 낮잠을 자던 엄마아빠를 깨워 조개구이가 먹고 싶다고, 바다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폭풍우가 치는 어두컴컴한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과 세찬 바람 사이로 보이는 검은 바다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에 휩쓸려 검은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조개구이를 먹었다.
5월 16일, 목요일마다 저녁에 영어 회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오랜만에 취식 스터디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스터디 자체를 외부에서 하기로 했다. 신촌의 한 고깃집을 예약했다. 한 스터디 멤버분이 꽃과 케익을 들고 나타나셨다. 그렇게 또 생일축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삼겹살이 진짜 맛있었다. 대학가 치고 좀 비싸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 가격 이상의 맛이었다.
5월 18일, 토요일에도 역시 아르바이트를 한다. 2주 전 캠핑에서 같은 조였던 언니오빠들이 다 같이 내 수업을 신청해 줘서 오후 수업에 한 자리에 모였다. 캠핑 조에서도 막내였어서 3일 내내 한국어로 실컷 우쭈쭈 당했는데, 앞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려니 자꾸 웃음이 나와서 계속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수업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예약해 둔 파티룸에서 실컷 먹고 마시고 놀았다. 편의점에 다녀온다던 언니오빠가 돌아오면서 케익을 사 왔다. 그렇게 한 번 더 생일축하를 받았다. 2주 전만 해도 내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이었지만 2박 3일의 우중 캠핑을 통해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한 명이 내 수업을 들으러 오겠다고 할 때 다 같이 우르르 오겠다는 단합력과 추진력이 있는, 그리고 그것보다도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아침이 될 때까지 놀았다.
그리고 5월 19일, 거의 잠을 못 잔 상태의 몸을 이끌고 교회를 갔다가 고등학교 때 룸메이트를 만나러 사당으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추억팔이를 하다가,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근황 토크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갔다.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컵케익 두 개와 작은 쪽지 하나를 들고 와 준 친구와 앞으로 생일 기념 밥 먹는 걸 우리만의 전통으로 삼자고 약속했다. 큰 홀케익말고 컵케익이나 조각케익으로 둘이 초를 불자고 약속했다. 생일 당일이나 생일 주엔 못 보더라도, 몇 주, 아니 몇 달이 지나더라도 꼭 생일 축하하는 식사를 매년 하자고 약속했다. 어쩌다 보니 몇 년째 다른 사람들에게, 당해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만 생일 축하를 받고 있었어서 그런가, 이런 약속이 생긴 게 퍽 반가웠다. 변화가 주는 즐거움 사이에서 작은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을 찾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대부분의 새로운 사람들과 몇몇 익숙한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는 와중에 오랜만에 받은 연락들도 있었다. 너무 익숙한, 그러나 오랜만에 보는 그 이름들에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의 거리에서 시간을 건너온 짧은 디엠이, 몇 줄의 라인이, 카카오톡이,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 이름들에서 나는 우리가 함께 걷던 거리들을 추억했고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을 추억했다. 예전만큼 가깝진 않았으나 끊이진 않았음에, 여전히 이들이 나를 아끼고 이렇게 내가 이들을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움에서 오는 사랑과 새로움에서 오는 사랑을 느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생일이었고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는 한 주였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나는 스물 넷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