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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좋은날 Mar 08. 2020

열매, 나무, 숲








열매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어  

따스한 햇살도 자신을 비춰주고  

햇살이 너무 더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살짝 맺힌 땀을 식혀주고  

달님만이 밤 하늘을 비추는 어두운 밤에는 나무가 자신을 지켜 줬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세게 불던 날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과 닮은 열매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어  

하지만 나무도, 바람도, 햇살도, 아무도 그 열매를 살펴주지 않았어   


땅에 떨어진 열매를 보며,  

나무에 달린 열매는 그제서야 알아 차렸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어  

나무에게 열매는 그저 많은 결실 중에 하나이고,

나아가 나무 역시도 숲에서는 많은 나무 중 하나의 나무라는 것,

숲 너머에도 보다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이 말이지  


순간 열매는 슬퍼졌어  

자신이 사라진다 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과  

그만큼 자신의 존재는 지극히 미약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참 슬펐어  


그 때, 나무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 왔어   


‘열매야,너무 움츠려 들지 마. 너의 존재는 달고 싱싱한 열매이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그 한마디 말이 열매에게는 위로가 되었어  


어느 밤보다 길었던 위로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어  

햇살은 여전히 열매를 비춰주었고,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고,  

나무는 어느 때보다 열매 자신을 꼭 붙잡고 있는 듯 느껴졌어


다시 보니 변한 건 없었어  

그저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을 뿐 

그저 세상의 중심은 저마다의 삶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뿐   


그리고 열매는 결심 했어  

나무의 말대로 우선은 더 달고 싱싱한 열매가 되기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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