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새싹

낙화(落花)

by 어느좋은날
351-낙화(落花).png










이맘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그렇게 비가 내리고 나면..

수줍은 봄의 발그레한 색들은 사라지고

싱그러운 봄의 푸르스름한 색들이 올라온다는 걸.. 익히 알면서도..


햇살이 조금만 더 포근해지면 보러 나가야지..

벚꽃이 조금만 더 피어나면 보러 나가야지.. 하다

이윽고.. 내 기다림을 게으름으로 바꾸어 버린.. 봄비가 내렸고..

봄의 푸르름을 재촉한 봄비는..

결국.. 발그레하게 피다 만 꽃잎들마저 다 떨어뜨렸더라


푸르름은 여름에도 가득하기에..

떨어진 꽃잎들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여겨졌기에..

이대로 나가봤자..

익숙한 과거를 마주하는 듯한 풍광들만이 비춰질 것 같았기에..

이번 봄은 그냥 흘려보낼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다음 봄을 떳떳이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느지막이 만나러 간 이번 봄은..

내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어


888.jpg


떨어진 꽃잎들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내 마음이 무색해질 정도로..

생그럽다 못해 생경하기까지 한 모습의.. 아름다운 꽃길을 펼쳐주었고..

발그레한 봄 위에서 한참을 노닐다 올 수 있었어



봄을 마주한 오늘을 곱씹어 보니.. 새삼 부끄러워지더라

누군가의 낙화는.. 누군가의 꽃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금껏 하지 못하고 살아 온 스스로가 작아 보여서 말이지..



해서.. 다음 봄은 조금 더 겸허하게 마주해보려고..

누군가의 서글픈 낙화는.. 누군가의 찬란한 꽃길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keyword
어느좋은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529
매거진의 이전글아틀라스의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