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초원을 거닐던 사슴이
여느 기린과는 달라 보이는 기린을 발견합니다
다른 기린들보다는 목도 다리도 짧은 것이
사슴이라 보아도 의심스럽지 않을 정도 입니다
비슷한 눈높이를 가진 다른 존재에
사슴은 호기심으로 다가갔고
비슷한 눈높이를 가져서였는지
좋아하는 것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생각의 방식도..
자신과 닮아있는 기린이 좋아졌습니다
몇 번의 만남과 이야기를 머금은 호기심은.. 사랑으로 자라났고
사슴과 기린은 서로의 마음과 시간을 공유해 나갑니다
평소처럼 함께 초원을 거닐던 어느 날
한참 높은 곳에 열려 있는 빨간 사과 하나가 사슴의 눈에 들어옵니다
사과를 따먹기에 둘은 너무 작았고 나무는 너무 높았습니다
작은 둘은.. 사과가 더 잘 익어서 떨어질 때쯤 다시 오자는 약속을 하고
큰 나무를 뒤로한 채 돌아섰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큰 나무 옆을 지나던 사슴은.. 떨어져 있는 사과를 발견했고
사과를 나누어 먹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기린에게 달려 갔습니다
기린이 늘 머물던 자리에는
사과를 나눌 기린이 아닌 여느 기린과 같은 보통의 기린이 서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슴에게
그 보통의 기린이 말을 건넵니다
넌.. 이제 나랑 안 어울려
나는 더 높은 세상을 보러 갈 거야
그렇게.. 며칠 사이 몰라보게 커버린 기린은
높은 세상을 보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며칠 전.. 큰 나무를 뒤로 남겨두었던 것처럼
사슴을 뒤로한 채 사라졌습니다
혼자가 된 사슴은 생각합니다
기린이 훌쩍 커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의 사랑이었기에 마음도 하나이리라 생각한 자신이 한심한 건지..
어디까지가 더 높은 곳인 건지..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처럼
높은 곳을 보고 난 후에는 낮은 곳은 더 이상 볼 마음이 생기진 않는 건지..
끝내.. 자신은 왜 더 자랄 수 없는 건지..
시간이 약이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몸소 느끼며 일상을 찾아가던 사슴에게도
이듬해 가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달지 않을.. 잘 익은 사과를 보며 머쓱하게 웃어봅니다